[프리미엄 리포트]‘선택의사’ 축소만으론 환자부담 줄지 않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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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못하는 선택진료제] 정부, 비급여 부담 개선 방안은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등 이른바 3대 비급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개선안을 발표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1월을 넘겨 11일 개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4월부터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민행복의료기획단(기획단)이 수차례 논의한 끝에 발표한 3대 비급여 개선 방안을 바탕으로 정부안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해결 카드를 꺼내들지 못하고 있다. 비급여는 한국 의료 시스템의 왜곡된 현상들이 집약된 문제여서 혁명적 수준의 조치 없이는 풀기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3대 비급여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면 결국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늘려야 하는데 재정 문제가 만만치 않다. 또 선택진료(6.5%)와 상급병실료 차액(4.2%)만으로 전체 진료수입의 10% 이상을 보전하고 있는 병원들을 설득하는 작업도 쉽지 않다.

○ ‘빅5 병원’ 입원환자 93.5%가 선택진료

선택진료비는 말로만 ‘선택’일 뿐 실제로는 환자의 선택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진료비 부담만 늘리는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기획단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빅5 병원’(삼성서울 서울대 서울성모 서울아산 세브란스)은 입원환자의 93.5%, 외래를 포함한 전체 환자의 76.2%가 선택진료를 이용했다. 2012년 환자들이 선택진료비로 지출한 금액만 1조3170억 원에 육박했다. 병원 총 수입의 약 6.5%, 전체 비급여 수입의 23.3%에 해당하는 액수다.

선택진료가 제 기능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범위를 대폭 축소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으로 거론돼 왔다. 선택진료 의사의 조건을 강화하고 범위를 진료과별로 대폭 축소하면 환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병원별 선택진료 의사 비율을 현행 80%에서 20∼30%까지 낮추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현행 제도는 전문의 경력 10년 이상 등의 조건을 갖추면 선택진료 자격을 준다. 병원은 이런 선택의사를 전체의 최대 80%까지 둘 수 있다. 이 때문에 종합병원(100병상 이상, 7개 진료과목 이상)의 경우 사실상 선택진료를 하지 않고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기 어려웠다. 전문병원 간판을 내건 30병상 이상 병원급 병원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선택진료비의 부분적 축소는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먼저 선택진료 의사가 줄면 그만큼 선택진료비가 인상될 우려가 높다. 이뿐만 아니라 선택의사 축소가 병원 내 갈등을 야기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빅5 병원의 의사들은 사실상 정상급 의사인데 현실적으로 선택의사를 줄일 방법이 없다.

○ 병원 표준화 없이는 병원 선택 도입도 어려워

의사별 선택진료제를 완전 폐지하고 새 판을 짜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정부가 병원 단위 평가를 통해 우수 병원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다. 이럴 경우 환자의 병원에 대한 선택권은 보장될 수 있고, 정부가 진료비를 통제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병원선택제 시행이 시기상조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국내 병원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정교한 평가에 소요되는 재원도 상당해 건보 재정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저평가가 예상되는 중소병원의 반발도 부담스럽다.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선택의사를 줄이는 방법은 근시안적인 대책이다. 장기적으로는 완전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단, 병원평가제로 가기 위해서는 병실을 표준화하고, 평가 잣대를 마련하는 등에 3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병실 선택권 박탈하는 상급병실제도


상급병실료 문제도 환자의 선택을 가로막고 있다. 환자들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일반병실(6인실)이 부족해 ‘울며 겨자 먹기’로 상급병실(1∼5인실)에 머물다가 일반병실로 옮겨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실상 자신의 형편과 기호에 따라 병실을 선택할 권리가 제한돼 왔던 셈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고려대 윤석준 교수팀이 공동 발표한 ‘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에서 6인실을 이용하려면 하루 평균 63명이 2.8일을 대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큰 병원일수록 일반병실의 비율이 낮다는 사실이다. 일반병실 비율은 병원급 77.8%, 종합병원 72.6%, 상급종합병원 64.9%로 대형병원일수록 낮았다. 빅5 병원은 58.9%로 더 낮았다.

일반병실은 기본 입원료의 20%만 환자가 부담하지만 상급병실은 병원이 자체 책정하는 ‘상급병실료 차액’을 환자가 모두 내야 한다. 이 비용은 연간 1조147억 원에 이르렀다.

○ 일반병실 비율 높여야 상급병실료 해결

상급병실료 문제는 일반병실 비율을 높이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하지만 그 비율이 높아질수록 손실을 봐야 하는 병원계는 이에 반발하고 있다.

가장 유력하게 검토되는 안은 일반병실 비율을 현행 50%에서 75%로 올리는 것이다. 현재는 병원을 새로 짓거나 증축할 때만 일반병실 비율을 70% 이상 확보하도록 하고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일반병실의 기준을 기존의 6인실에서 4인실로 축소하고 43개 상급종합병원에서는 일반병실의 수를 전체의 70%로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병원별 병실 가격, 빈 병실 현황, 입원 예정일, 입원 대기순번 등 상급병실 운영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는 3대 비급여 중 부담이 가장 심한 것으로 알려진 간병비 개선은 장기 과제로 돌릴 가능성이 크다. 입원환자의 약 40%가 평균 월 200만 원이 넘게 지출하고 있는 간병비를 건보 재정이 모두 떠안기는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선택진료제#비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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