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보수성향 많지만… ‘위험한 정당’ 인정 6명 넘을진 미지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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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해산심판 18일 2차 변론] 헌법재판관 9인 주요 결정 분석해보니

“우리나라 진보정당은 광복 이후부터 존재해왔습니다. 청구인 측 기준에 맞춰 보면 여운형 박헌영 등이 주장한 진보적 민주주의와 강령도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것 아닌가요?”(김이수 헌법재판관)

“진보적 민주주의는 서면에서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통진당에 대한 위헌성 유무를 심리하는 이 재판에서 다른 당의 위헌성을 설명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정점식 검사)

“피청구인은 헌법상 정당해산 및 규제의 타당성과 필요성에 대해 긍정하는가요?”(이진성 헌법재판관)

“명문으로 현존하는 제도로서는 시인합니다. 다만, (이 제도는) 사법기관이 매우 신중하게 판단하는 방식으로 운용돼야 합니다.”(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통진당 위헌정당심판 청구 사건을 심리하는 헌법재판관 9명이 한자리에 모인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한국 정치 지형을 한 번에 뒤바꿀 수도 있는 이번 사건의 파괴력을 인식한 듯 재판관들은 첫날부터 질문을 쏟아냈다. 헌정 사상 초유로 진행되는 이번 사건에서 9인의 ‘현자(賢者)’는 통진당이 헌법의 핵심 가치를 부인하는 ‘조직화된 적’인지를 가려야 하는 숙명을 떠안았다.

○ 주심 이정미 재판관, 다수 의견 낸 경우 많아


헌법재판관의 성향을 평가할 때 박근혜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이 추천했으면 보수 성향으로, 민주당이 추천했으면 진보 성향으로 분류하는 시각이 많다. 추천자 성향을 재판관의 성향과 등식화하는 것으로 이에 따르면 보수 4명, 진보 1명이라는 단순 계산이 성립한다. 여야 합의나 대법원장 추천으로 임명된 나머지 4명은 성향에 대한 평가가 분분하다. 본보가 재판관 9명이 내린 결정 200여 건 중 헌재가 제공한 중요 결정 14건을 분석한 결과 재판관별로 미세한 시각차가 드러났다.

위헌정당해산 청구 사건 주심으로 진보 성향이라는 평가가 많은 이정미 재판관은 14건 중 2건에서만 소수 의견을 냈다. 주요 사건에서 다수 의견과 같이한 셈이다. 오히려 주요 결정에서 소수 의견을 많이 낸 재판관은 법원행정처 차장, 서울중앙지법원장 등 법원 요직을 두루 거친 이진성 재판관(7건)이었다.

검찰 출신인 박한철 헌재소장과 안창호 재판관도 보수적 입장에만 치우치지 않았다. 박 소장은 형법상 ‘모욕죄’에 위헌 의견을 냈다. 그는 재판관 2명(김이수 강일원)과 함께 “모욕의 의미가 지나치게 광범위해 이런 규정으로 처벌하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고 판단했다. 안 재판관도 성폭력범죄 피해 아동의 법정 진술 없이도 증거능력을 인정토록 한 법령에 대해 2명(서기석 이진성)과 함께 “피해 아동 보호가 형사소송 절차에서 중요한 가치이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목적일 수는 없으며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그러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의 위헌성에 대해서는 5 대 4로 팽팽히 갈렸다. 사전 신고 없이 시위를 벌인 주최자를 처벌토록 한 집시법 조항에 대해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강일원 재판관 등 4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 사전 신고를 하기 어려운 긴급집회까지 처벌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본 것.

헌재 관계자는 “재판관이 판사 출신인지 검사 출신인지, 대통령 추천인지 야당 추천인지 등을 근거로 결과를 예단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6명 동의 있어야…해산결정 만만찮아

주심인 이정미 재판관은 첫 변론에서 법무부가 정당해산 요건으로 ‘필요성’과 ‘비례성’을 언급했다가 ‘비례성’을 철회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이는 헌재가 통진당을 해산시켜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그에 비례해 해산시켜야 할 만큼 통진당이 실제로 위험한지를 살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만약 통진당의 위헌성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위험성까지 법무부가 입증해야 한다면 재판관 6명 이상의 동의를 이끌어 내기는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 헌법학자는 “헌재의 위헌정당해산도 구체적 위험성에 상응하는 비례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급박하고 현실적인 위험이 있는 게 아니라면 재판관들은 ‘정당 활동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다른 헌법학자는 “조직화한 정당은 의석수와 관계없이 헌법을 침해할 파괴력이 있다”며 “이들의 의도가 실행되는 순간 대한민국 헌정질서가 무너지는 것인 만큼 위헌성만 인정돼도 해산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는 소수 의견을 낸 재판관이 누구인지도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때는 결정문에 소수 의견을 낸 재판관의 실명을 밝히지 않았으나, 이후 법이 개정돼 소수 의견을 낸 재판관과 그 내용이 공개될 예정이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통합진보당#정당해산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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