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배움 늦었지만 자신감 생겼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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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부산 성인 여자중-고교 졸업식
50∼70代 만학도 292명 특별한 감회
고교졸업생 30%는 대학진학 예정

6일 졸업하는 부경중·보건고 병설 성인 여자중고교 어머니 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지난해 12월 팝 페스티벌을 열었다. 부경보건고 제공
6일 졸업하는 부경중·보건고 병설 성인 여자중고교 어머니 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지난해 12월 팝 페스티벌을 열었다. 부경보건고 제공
“지난 세월 배움에 목말랐던 우리들은 언제, 어느 곳을 가더라도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배우지 못한 탓에 남들이 무시할까 기죽어 살았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소중하기에 더욱 열심히 배우고 익혔습니다.”

배움에 대한 서러움을 떨쳐낸 늦깎이들의 특별한 졸업식이 6일 오전 10시 부산 사하구 장림2동 은향교회에서 열린다. 졸업생은 바로 옆 부경중·보건고 병설 성인 여자중고교의 만학도들. 학교에 강당이 없어 졸업식은 교회에서 연다. 중학교는 11회, 고등학교는 12회 졸업생을 배출한다. 졸업식에는 임혜경 부산시교육감도 참석한다.

이 학교는 ‘1950, 60년대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희생을 강요당하며 배움의 한을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들을 위한 배움터를 만들자’는 권성태 설립자의 교육이념을 실천하면서 2001년 교육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다.

이날 졸업식에서는 50∼70대에 배움의 끈을 놓지 않은 292명이 중학교(118명)와 고등학교(174명) 졸업장을 받는다.

초등학교만 나온 부산 서구 암남동 양은정 씨(63)는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됐다. 앞만 보고 달려온 그에게 2011년 할머니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수소문 끝에 부경중·보건고 병설 성인 여자중학교에 입학했다. 자궁암과 척추 등 4번의 대수술로 정상적인 몸은 아니었지만 결석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는 아들이 사업에 실패한 후 며느리가 가출하는 바람에 지적장애 2급(18), 3급(15)의 손자 2명을 홀로 돌보면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이번에 중학교 졸업장을 거머쥐었다. 그는 “학비가 걱정이지만 고등학교도 진학하겠다”고 말했다.

김해순 씨(60)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4년간 간호하면서도 공부를 계속해 졸업의 기쁨을 누린다. 네팔인 이주여성인 아레파라티마 쿠마리(한국명 김은주·29) 씨와 중국인 이주여성 류옌리(劉艶麗·34) 씨도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졸업장을 받는다. 이들은 “이주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각오로 부산 경상대 사회복지행정학과와 중어중문학과에 각각 진학한다.

고교 과정은 정정엽 씨(87)가, 중학 과정은 박영희 씨(69)의 나이가 가장 많다. 중학교 졸업생 85%는 고등학교로, 고등학교 졸업생 30%는 대학으로 진학한다.

고등학교 졸업생 대표인 김철순 씨(66)는 5일 졸업식 예행연습에서 “부경에서의 시간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 오늘 우리는 2년 전 한없이 작은 모습으로 교문을 들어서던 학생이 아니라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됐다. 20대에서 70대까지 천차만별인 우리들을 언제나 똑같이 아끼고 사랑해주신 선생님들 덕분이다”란 답사를 읽었다.

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부경중·보건고 병설 성인 여자중고교#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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