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폭력 시달리다 극단 선택… ‘天倫의 형벌’ 法보다 더 무겁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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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살해’ 어떤 사연 있기에

“어머니랑 휴가를 보내고 싶어서요.” 2011년 8월 초 A 씨(당시 40세)는 어머니를 요양원에서 집으로 모셔 왔다. 어머니는 2001년부터 치매를 앓았다. 아버지가 2007년 사망한 뒤 어머니 간병은 A 씨 몫이었다. 병세가 깊어질수록 어머니는 폭력적으로 바뀌었다. 주민들 항의 때문에 요양원에 모셨지만 석 달간 5번이나 옮길 정도로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A 씨는 생각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게 모두를 괴롭지 않게 하는 길이다.’ 자신도 어머니 뒤를 따르겠다고 결심했다. A 씨는 어머니를 모셔오기 며칠 전 포장용 테이프를 샀다. 수면제도 처방받았다.

수면제를 4, 5알 먹은 어머니는 다음 날 아침에도 의식이 없었다. A 씨는 어머니의 입과 코에 테이프를 붙이고 손으로 눌렀다. 범행 직후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다 잘못을 뉘우치고 자수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2012년 A 씨에게 존속살해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의 아버지 박모 씨(58)가 치매 부모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질병이나 학대 등을 이유로 한 ‘존속살해’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춘천지법 형사합의2부(부장판사 정문성)가 지난해 9월 징역 7년을 선고한 B 씨(당시 59세)도 자녀가 치매 부모 간병을 홀로 떠안을 경우 존속살해를 저지를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천엽을 사 왔으니 함께 먹자.” 지난해 2월 어머니가 B 씨에게 걸레를 들이대며 말했다. 술을 마시고 귀가한 B 씨는 화가 났다. 혼자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것에 회의감도 들었다. B 씨는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고 여기저기 내리쳤다. 주방 싱크대, 안방 문틀, 거실 바닥….

부모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범행을 저지른 경우도 있다. 언청이(구순구개열)로 태어나 따돌림을 받아온 C 씨(당시 20세)가 의지할 사람은 어머니뿐이었다. 그런 어머니를 아버지가 때리는 모습을 목격한 C 씨는 충격을 받았다. 반복적으로 폭행 장면을 떠올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앓게 됐다. C 씨는 지난해 7월 초 “군에 입대한다”며 일용 노동을 하는 아버지를 집에 오게 했다. 칼날을 갈고 베개와 소파를 찌르는 연습을 한 뒤 아버지에게 수차례 휘둘렀다. 수원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윤강열)는 C 씨에게 지난해 12월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8년 45건이던 존속살해 발생 건수는 2009년 58건, 2010년 66건, 2011년 68건으로 늘다가 2012년(50건), 2013년(49건)에 주춤하는 추세다. 존속살해는 일반 살인보다 법정 형량이 2년 이상 무겁다. 형법 제250조 제2항은 존속살해범을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존속살해는 형량을 정할 때 가중 요인이 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살인범죄 양형 기준에서 ‘피해자가 존속인 때’를 가중 요소로 적용했다. 치매 부모를 살해하면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로 분류돼 형량이 더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평소 치매 부모를 수발하면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었거나 부모에게 오래 학대를 당한 경우 등에는 정상이 참작되기도 한다. 진지하게 반성하거나 다른 가족들이 처벌을 원치 않을 때도 형량이 낮아질 수 있다. A, B, C 씨도 이런 이유로 형을 감경받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오죽하면 부모를 살해했겠느냐는 정상이 참작되는 경우가 꽤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산 상속 등을 노렸거나 범행 수법이 잔혹한 존속살해는 형이 크게 가중된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존속살해#치매#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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