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맞물린 취업시즌, 면접서 지지후보 물으면… ‘친기업 후보’ 정답은 정해져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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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후보 지지땐 불이익” 인터넷 카페 경험담 잇따라… 취업 준비생들 전전긍긍

지난달 말 A기업의 입사면접을 본 취업준비생 B 씨는 영어 면접에서 당혹스러운 질문을 받았다. “Who will you vote for in the upcoming election(다가오는 선거에서 누구에게 투표할 건가요)?”라는 질문이었다. 그는 지난달 초 다른 기업의 임원 면접에서도 지지 후보를 묻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비밀투표의 원칙, 양심의 자유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쾌감이 들었지만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문제 제기를 할 수 없었다. 면접 후 집에 돌아와 자주 가는 인터넷 취업 게시판을 살펴보니 비슷한 고민을 놓고 토론하는 취업준비생이 수두룩했다. ‘설마 그렇겠느냐’는 글에서 ‘나도 그런 질문을 받았다’는 글까지 다양했다.

A기업은 27일 본보의 확인 취재에 “영어 실력 평가를 맡긴 외부 교육 업체 소속 면접관이 일부 지원자들에게만 했던 질문”이라며 “내용이 아니라 문법과 어휘, 발음에 대한 사항만 보고받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업 측의 의도가 무엇이든 민감한 대선 정국에서 취업준비생들은 ‘면접에서 대선후보에 관한 질문을 받고 회사의 입맛에 맞지 않게 답변했다가 불이익을 받는 것 아니냐’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2주 전 C기업의 입사면접을 본 이모 씨(28)는 인터넷에서 기업 정보를 찾다가 ‘대선 관련 질문에 대비하라’는 면접 후기를 봤다. 일주일간 진행되는 면접 중 첫날에 면접을 봤다는 글쓴이는 ‘면접에서 거의 정치 질문이 나온다’며 ‘그 기업 분위기를 볼 때 ○○○ 후보에 대해 우호적으로 대답하면 그 다음부턴 질문을 안 한다’고 썼다. 이 씨는 “사실 딱히 지지하는 후보는 없지만 주변의 조언에 따라 ○○○ 후보 대신 ××× 후보를 지지하는 논리를 준비해 면접에 임했다”고 털어놨다. 댓글에도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정답만 말해’라는 뜻의 인터넷 신조어)를 명심하라”는 반응이 많았다.

C기업은 “기본 문항에는 대선 관련 사안이 없지만 문답이 이어지면서 면접관에 따라 관련 질문을 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며 “시사 상식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능력만 평가할 뿐”이라고 밝혔다.

대선과 맞물려 입사면접 일정이 진행되면서 가입자가 100만 명에 이르는 한 인터넷 취업 카페에는 전자회사, 유통업체 등에서 “어느 후보를 뽑을 생각이냐”, “각 후보의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의 질문이 나왔다는 경험담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면접관이라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이 지지하는 후보를 직접적으로 묻는 것은 양심의 자유와 비밀투표의 원칙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취업면접#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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