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새벽파업’ 도시 하층민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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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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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 몰린 시민들 22일 오전 서울 지하철 1호선 신도림역이 출근길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정치권이 ‘택시법’ 본회의 상정을 보류하자 버스업계도 이날 오전 운행 중단을 철회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지하철에 몰린 시민들 22일 오전 서울 지하철 1호선 신도림역이 출근길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정치권이 ‘택시법’ 본회의 상정을 보류하자 버스업계도 이날 오전 운행 중단을 철회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해가 동쪽 하늘에 걸리기도 전 소주를 넘기는 일용노동자 윤모 씨(52)의 입맛은 썼다. 윤 씨는 22일 버스업계의 파업 때문에 첫차가 운행되지 않아 건설 현장에 가지 못했다. 일감 날려 속상한 마음을 동료들과 해장국집에서 술 한잔으로 달래던 참이었다.

“당장 오늘 일당 9만 원 받아서 다음 달 방값 26만 원 내야 하는데….” 윤 씨의 한숨 섞인 한마디다.

○ 첫차 못 타면 하루 날리는 설움

이날 오전 6시 20분경 버스업계가 전국 단위의 운행 중단을 철회하면서 우려했던 출근길 교통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보기술(IT) 업체에서 일하는 홍승국 씨(31)는 “파업 소식 탓에 평소보다 30분 일찍 나왔지만 금세 버스가 다시 다녀 별 불편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첫차 시간인 오전 4시부터 2시간가량은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피해는 이 시간대에 버스로 출근해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는 일용노동자 식당종업원 등이 떠안았다.

윤 씨도 경기 남양주시 평내동 건설 현장으로 가기 위해 이날 오전 5시부터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버스환승센터에서 광역버스를 기다렸지만 버스는 오전 7시가 다 돼서야 오기 시작했다. 이미 현장 사무소로부터 ‘늦었으니 아예 나오지 말라’는 전화가 걸려온 뒤였다. 침체된 건설 경기 탓에 어렵사리 잡은 일감이라 허탈감이 더했다.

평소 엄두도 내지 못했던 택시를 타야 한 사연도 있다. 최모 씨(53·여)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건설현장식당에 오전 6시까지 출근한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40분 거리. 버스를 기다릴 수도 일당을 포기할 수도 없던 최 씨는 택시를 탔다. 택시비 4500원은 최 씨가 1시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하루라도 빠지면 ‘다음부터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을까 봐 걱정돼 내린 결정이었다.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에서 청소일을 하는 박모 씨(57·여)는 21일 밤 아예 당직실에서 잠을 잤다. 경기 의정부시 집에서 첫차를 타지 못하면 출근시간인 오전 6시까지 도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파업도 못 하는 이들의 하소연

인력사무소에도 비상이 걸렸다. 하루 70∼80명의 일용노동자를 현장에 소개해 주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창창인력사무소엔 이날 오전 “왜 인부들이 오지 않느냐”는 전화가 빗발쳤다. 사무소 소유 승합차로 인부들을 최대한 실어 날랐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날 소개를 기다렸던 노동자 72명 중 20여 명은 건설 현장에 가지 못했다. 이 사무소의 김천기 실장(54)은 “7년째 사무소에서 일했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결근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일용노동자 김모 씨(48)는 “버스업계도 고충이 있겠지만 ‘반짝 파업’으로 실력을 과시하는 동안 피해를 보는 건 우리 같은 도시 하층민”이라며 “버스나 택시 운전사처럼 힘 모아 하소연할 수도 없는 처지라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조건희·박희창·김재영 기자 becom@donga.com
#버스파업#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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