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나의 NIE]희로애락 담긴 신문 활자는 문자 디자인의 값진 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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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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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인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 명예교사·캘리그래퍼

나의 하루는 한글로 시작해 한글로 끝이 난다. 한글을 이미지화하는 캘리그래퍼가 직업이다 보니 간판의 글자 하나를 봐도, 어떻게 표현하면 가게의 정보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제품 타이틀을 의뢰받거나 작품을 만들 때면 하나의 단어를 수백 번 쓰기를 반복한다. 내리 긋는 획 하나, 휘어 감는 붓놀림 하나에도 그 말이 갖는 맛이 달라진다.

이런 작업을 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교재는 매일 아침 읽는 신문이다. 신문에 비쳐지는 수많은 사건과 단어를 보며, 여러 단어의 맛을 가장 잘 표현할 만한 글씨를 생각하고 머릿속에서 그려 보곤 한다.

수많은 정보가 압축된 신문을 읽는 일은 매일 새로운 책 한 권을 읽는 일과 같다. 신문을 통해 얻는 사회 정치 경제 문화 관련 뉴스는 매일 글씨를 쓰는 작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정보다. 예를 들어 제과류 분야 A 기업의 제품 로고를 만든다고 가정하자. 평소 A 기업의 정보, 제과류 업계의 동향이나 경쟁 업체의 상품 개발 현황, 최근의 제과류 패키지디자인 경향 등 여러 가지 사전지식이 요구되는데, 신문이 내게는 매우 중요한 정보원이 된다.

이렇게 매일 신문 속 활자를 눈여겨보니 이제는 글자 속의 희로애락이 눈에 함께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려운 이웃의 이야기, 소외된 청소년의 이야기는 감정 없는 서체로 쓰여 있지만 그 속에 맺힌 눈물이 보이는 듯하다. 이렇듯 활자가 전하는 이야기에 주목하면서부터 신문은 글의 행간을 읽듯이 사회의 행간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통로라는 또 하나의 의미를 갖게 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 명예교사가 되어 작년부터는 소년원 학교 아이들과의 만남을 시작했다. 가정과 사회에서 상처를 입은 아이의 마음속에 미래라는 희망을 심는 특명을 받은 셈이다. 힘든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을 대하니 무슨 말을 먼저 건네야 할지 난감했다.

이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요즘 신문에 오르내리는 인기가수 싸이의 ‘말춤’이었다. 아이들에게 “우스꽝스러운 말춤으로 월드 스타가 될 줄 누가 알았느냐”며 신명나게 춤추는 사람의 형상을 담은 ‘춤’자를 보여 주니 그제서야 캘리그래피와 한글의 아름다움, 독특함에 대한 이야기가 가능했다. 어떤 분야든 싸이처럼 정말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미치면 언젠가 꼭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을 때는 아이들의 눈빛마저 달라져 있었다.

요즘은 아이들을 만나기에 앞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풀어 가기 위해 신문을 숙제처럼 꼼꼼히 읽는다. 이전에는 그냥 지나쳐 갔던 요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니 왜 아이들이 꿈이 없다고 말하는지, 어떤 때 외롭고 무엇이 두렵다고 하는지, 좀 더 쉽게 이해가 된다.

아이들의 이런 섬세하고 불안정한 감정을 타인에게 폭발시키지 말고 한자 한자 정성스러운 손글씨에 담으며 자신을 되돌아보도록 한다. 또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냄으로써 사회적응력을 키우려고 한다. 이게 나의 역할인 듯하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이를 아이들의 재능으로 키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나는 아이들에게도 신문을 곁에 두고 늘 읽으라고 말해 주고 싶다. 활자를 좇던 내 눈 속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왔듯이, 재밋거리를 찾는 아이들의 눈에도 미래를 위한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리라 믿는다.

강병인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 명예교사·캘리그래퍼
#강병인#신문과 놀자#캘리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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