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신고 묵살하는 교통안전공단… 10년간 1725건 중 달랑 17건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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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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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자동차 급발진 사고 신고를 해도 정부는 대부분 기본적인 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외면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19일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국토해양부 산하 교통안전공단이 급발진 사고를 조사한 비율은 전체 급발진 사고 접수 건수의 1%에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급발진 사고 조사가 완료된 13건에 대한 공단의 조사보고서는 모두 원인 규명과는 거리가 먼 운전자 신상정보, 자동차 사양 등으로 채워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급발진 사고 원인을 놓고 자동차 회사와 운전자가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손을 놓고 있었던 셈이다. 1981년 설립된 교통안전공단은 차량 결함 등을 조사하는 자동차 전문 국가기관이다.

○ 급발진 사고 외면

2003년부터 올해 6월까지 공단의 제작결함신고센터에서 145건, 한국소비자원에서 1580건의 급발진 사고 신고를 각각 접수했다. 소비자원에서 접수한 신고는 공단이 확인해 필요한 경우 조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전체 신고 1725건 가운데 공단이 실제 조사에 나선 건 17건에 불과했다. 그나마 4건은 급발진 논란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고조된 최근에 접수해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다. 특히 소비자원에서 접수한 급발진 관련 사고는 단 한 건도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공단 업무지침에는 제작결함신고센터에서 자동차 결함 신고를 수집하고 이를 처리하도록 돼 있지만 급발진 사고에 대해서는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공단 측은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민관 합동으로 조사해 (기어변속장치 등) 기계적 결함은 급발진의 원인이 아니라는 결론을 냈다”며 “이 결과 때문에 2009년경까지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한 차례의 조사 결과를 앞세워 끊임없는 신고를 외면하다 자동차 전자제어장치가 급발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계속되자 2010년부터 조사를 재개한 것이다.

공단 측은 또 “소비자원을 통한 접수는 신고자 인적사항이 정확하지 않고 내용도 부실해 조사하지 않았다”며 “같은 차종에서 동일한 결함이 지속적으로 생기면 조사위원회를 열어 조사 여부를 결정하는데, 급발진 사고는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본보 취재팀이 19일 한국소비자원 홈페이지에서 자동차 결함 신고를 해 본 결과 처음부터 인적사항을 적도록 돼 있었다.

○ 급발진 보고서에는 연식과 속도만

이처럼 극소수의 경우에만 현장 조사가 진행되지만 그나마도 결과가 부실했다. 심 의원실이 확보한 공단의 현장 조사 보고서 13건은 모두 A4용지 한 장 분량이다. 예를 들어 ‘2010년 포천 오피러스 건’ 보고서에는 △발생 장소, 신고 경로, 노면 상태 등의 일반 정보 △연식과 주행거리를 설명한 자동차 정보 △운전자 신장과 나이 △사고 시 속도, 사고 방향 등을 기재한 사고 정보가 간단히 담겨 있다. 보고서 어디에도 전자장치의 이상 유무 등 자동차가 갑작스레 달린 원인에 대한 분석은 없었다.

공단은 사고 조사를 위해 자동차 사고기록장치(EDR) 분석 장치를 도입하고, 2008년부터 자동차회사로부터 20여 건의 EDR 자료도 받았지만 조사에 활용하지 않았고 보고서에도 이런 내용을 담지 않았다.

EDR에는 충돌 직전 5초 동안의 속도와 브레이크 작동 여부, 분당 엔진 회전수(RPM) 등이 담겨 급발진 사고 원인을 찾을 수 있는 열쇠로 평가받는다. 공단은 이미 이 자료를 확보하고도 숨긴 것으로 드러나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본보 8월 28일자 A12면 급발진 ‘5초의 비밀’… 당국, 알고도 모른척

공단 관계자는 “현장 조사를 나가 제동장치와 엔진 상태 등을 육안으로 확인하는데 기계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조사를 종료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올 5월 시작한 급발진 관련 민관 합동조사가 10월에 끝나면 남아 있는 사건도 조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급발진 사고를 신고한 운전자들은 “정부가 결국 거대 자동차 회사의 편을 들고 있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급발진 의심사고 피해자 김모 씨(62)는 “정부가 손을 떼고 있는 사이 자동차 회사는 급발진 사고가 나면 운전자 과실이라고 주장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고현국 기자 mck@donga.com  
#급발진 사고#교통안전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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