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킴이’가 ‘야수’ 돌변 아이들은 홀로 떨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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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66세 학교 지킴이, 초등생 9명 55차례 성추행
신원검증-위촉, 학교장 재량… 성희롱 예방교육 부실하고 근무평가도 안해 관리 허술

경남 창원시에서 60대 ‘배움터 지킴이’가 초등학교 여학생들을 교내에서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학부모 사이에서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폭력 예방과 인성교육 지원을 위해 2005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한 배움터 지킴이 제도는 현재 전국 대부분의 초중고교에서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배움터 지킴이 위촉 및 관리 과정이 허술해 유사한 사건이 다시 발생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 ‘지킴이’가 ‘야수’로

경남 진해경찰서는 수십 차례에 걸쳐 초등학생을 성추행한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배움터 지킴이 A 씨(66)를 구속했다고 3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이달 19일 오전 10시 반경 자신이 근무하는 창원시내 한 초등학교 운동장 벤치에서 2학년 B 양(8)에게 “과자를 사 먹어라”라며 1000원을 준 뒤 속옷 안으로 손을 넣어 신체를 만지는 등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09년 3월 이 학교 배움터 지킴이로 위촉된 A 씨는 지난해 4월부터 최근까지 1∼4학년 여학생 9명에게 500∼1000원을 주고 55차례 성추행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A 씨는 쉬는 시간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 않은 교내 벤치와 창고에서 성추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의 범행은 B 양 부모의 신고로 드러났다. 이 학교에 다니는 큰딸 B 양과 1학년인 동생(7) 등 두 딸에게 용돈을 준 적이 없는데도 자주 돈을 갖고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확인한 결과 “(학교에 근무하는) 할아버지가 줬다. 몸을 만졌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B 양 부모는 밝혔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여경 2명을 학교에 보내 1∼4학년 여학생 97명을 면담해 이 자매 외에 피해자 7명을 추가로 확인했다.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지난해 봄 B 양 몸에 묻은 모래를 털어 주다 귀여워 몸을 만졌는데 별다른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아 계속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B 양 자매 외의 성추행 혐의는 부인하고 있다.

배움터 지킴이가 성범죄자로 돌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3월 제주지법은 중학교에서 배움터 지킴이로 활동하던 중 상담을 받으러 온 C 양(당시 14세)을 “상담이 더 필요하다”며 자신의 승용차에 태워 한적한 곳으로 데려가 강제 추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D 씨(64)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채널A 영상] 해군 출신 ‘배움터 지킴이’ “스치고 지나가는 건데…”

▼ 1년마다 계약 갱신해 몇년씩 근무하기도 ▼

○ 선발과 사후관리 허술해


A 씨가 근무한 학교 관계자는 “직업군인 출신인 A 씨가 국가공무원법이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결격사유는 물론이고 전과도 없었다”며 “이런 일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2009년 신학기에 처음 지킴이로 위촉된 A 씨는 결근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등하교 지도와 학교폭력 예방 등 모든 면에서 모범적이었다고 학교 관계자는 전했다. 군에서 33년 동안 장기 복무한 그의 이력도 장점으로 꼽혔다. 한 교사는 “믿을 만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충격이 크다”고 말했다.

배움터 지킴이 가운데는 전직 교원이나 경찰관, 직업군인이 많다. 청소년상담사와 사회복지사도 포함돼 있다. 농촌지역은 지킴이 희망자가 적어 위촉이 어려운 반면 도시지역은 1명 모집에 3, 4명이 응모하는 경우도 있다. 응모자는 경찰에서 범죄 경력 조회서와 신원조회서 등을 떼어서 학교에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배움터 지킴이가 학교폭력 예방 활동 및 교육, 부적응 학생 상담, 교내외 순회지도 등 ‘준(準)교사’ 역할까지 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검증 및 위촉이 일선 학교장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다. 교장이나 교내 생활지도교사가 이력서나 범죄 경력 조회서 등을 검토하는 서류전형과 간단한 면접을 통과하기만 하면 학생 지도업무를 맡게 되는 것이다.

또 관리 주체인 학교가 지킴이에 대한 성희롱 예방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아 관리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3월부터 학교보안관을 하던 정모 씨(69)는 “올해 3월에 한 번 교육받은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공무원 출신의 서울 지역 한 초등학교 학교보안관은 “학교가 요구하는 것은 없고 매일 어떤 근무를 했는지 보고만 하면 된다”며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해 몇 년씩 하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배움터 지킴이 사업은 2005년 3월 신학기를 맞아 부산지방경찰청과 부산시교육청이 공동으로 7개 학교에 스쿨폴리스 제도를 시범 운영한 것이 시초. 학부모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자 교과부는 그해 11월 전국 70개 학교에 배움터 지킴이를 배치했다. 2008년부터 각 시도가 교과부 예산을 지원받아 자체적으로 고용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2008년 1716명, 2009년 3243명, 2010년 9517명 등으로 크게 늘었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지킴이들은 월 20일 근무를 기준으로 활동비 80만 원 정도를 받는다.

서울의 경우 사립 초등학교와 국공립 중고교에는 배움터 지킴이, 국공립 초등학교에는 서울시가 자체 예산을 들여 고용하는 학교보안관(554개교에 1108명)이 각각 배치됐다. 학교보안관은 평일에는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토요일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교대근무를 하며 월 110만5000원을 받는다.

서울 지역의 한 사립 초등학교 교사는 “대다수가 훌륭한 분이지만 창원 사건과 같이 극소수가 문제를 일으킬 경우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고 걱정했다.

창원=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창원#학교지킴이#성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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