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하나 없는… 그곳은 ‘노래방 가스실’이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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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노래주점 화재 9명 질식사… 피해 키운 5가지
업주-종업원, 손님 팽개친 채 비상벨도 안울리고 먼저 대피

5일 발생한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노래주점 화재 참사는 창문 없는 밀폐된 통유리 벽, 위급 상황 때 제 역할을 못한 비상구, 화재 초기 늑장 대처 등 복합적 인재(人災) 때문에 피해가 컸던 것으로 6일 밝혀졌다. 경찰은 불이 났을 때 업주와 종업원 대처에 일부 과실이 있었다는 생존자 등의 진술을 확보하는 한편 내부 불법 개조 의혹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 역할 못한 비상구와 미로형 내부


불이 난 노래주점은 ‘ㅁ’자형 복도를 따라 방 26개가 배치된 독특한 구조다. 다급한 상황에서 출입구를 찾으려다 이런 구조에 막혀 6, 7, 8번방 복도 근처에서 사망자 5명, 14, 15, 16번방 앞에서 사망자 4명이 발견됐다. 주 출입구 근처에 있는 21번과 24번방 벽 쪽에서 시작된 불길이 출입구 쪽으로 번져 대피로도 막혔다.

비상구도 출입구 반대편이 아니라 출입구 주변에 몰려 있어 탈출이 어려웠다. 건물 외벽 접이식 사다리와 연결되는 비상구는 방을 통과해야 되기 때문에 종업원이 아니면 알 수 없었다. 한 생존자는 “너무 어두워 비상구 등이 보이지 않았다. 비상벨이 울리지 않았고 스프링클러도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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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자 “노래주점 측 대피 유도 없어”


스리랑카인이 포함된 전직 회사 동료 7명, 여자 지인 4명 등과 자리를 함께한 A 씨(24)는 오후 8시 50분경 종업원이 방문을 열 때 메케한 냄새를 맡았다. 종업원은 “괜찮다”고 했다가 10초 뒤 다시 들어와 “불이 났으니 나가라”고 말했다.

흩어지지 않으려 6명씩 나눠 손을 잡고 방을 나섰던 12명은 뜨거운 열기와 내부를 뒤덮은 검은 연기 때문에 이내 흩어졌다. 기어서 가까스로 현장을 빠져나온 A 씨는 자신보다 먼저 밖으로 나왔던 종업원 5명을 보고 놀랐다. A 씨는 “불이 나면 내부 구조에 익숙한 직원들이 손님들을 먼저 대피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며 “복도를 헤매다 주검으로 발견된 동료들을 보니 울분이 차올랐다”고 말했다. 업주 등은 최초 불이 났을 때 소화기로 진화하려 했다가 실패하자 손님들에게 화재 상황을 알려주고 119에 신고했다.

○ 내부 삼킨 방음재 검은 유독가스

방 26개가 있는 노래주점 벽은 칸막이 방음 처리를 위해 스티로폼 등 가연성 내장재로 마감 처리됐다. 하지만 막상 불이 나자 불길보다 무서운 검은색 연기가 유독 가스를 뿜어대며 내부를 삼켰다. 외벽을 창문 하나 없이 통유리로 만들고 안쪽 창은 석고보드로 덧댄 밀폐 구조여서 유독 가스가 내부만 맴돌아 금세 가스실로 변했다.

한 생존자는 “스마트폰 ‘손전등’ 애플리케이션을 작동했지만 복도를 뒤덮은 검은 연기 때문에 1cm 앞도 안 보였다”고 말했다.

○ 내부 불법 개조 의혹 수사


부산시소방본부에 따르면 이 노래주점은 2009년 개업 당시 방 24개를 갖췄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날 25번, 26번방이 있고 스리랑카인이 포함된 12명은 25번방에 함께 있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비상구가 있는 부속실과 다용도실을 불법 개조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나서기로 했다. 화재가 난 건물은 지난해 11월에도 2층 노래방에서 불이 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8월 관할 소방서 소방점검에서 이 노래주점은 전기시설 불량으로 지적돼 수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화재 원인을 전기적 요인으로, 사망자 9명의 사인은 질식사로 추정했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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