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혜택 OECD 최하위… 원인은 ‘감기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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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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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건강보험 혜택(보장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국가 중 최하위권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5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2012년 사회보험의 변화와 전망’에 따르면 2009년 OECD 국가 중 한국의 공공의료비 비중은 58.2%로 칠레(47.4%), 미국(47.7%), 멕시코(48.3%)에 이어 네 번째로 낮았다.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을 매년 늘리고 있지만 다른 국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공공의료비 비중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개인이 지출하는 의료비가 많다는 얘기도 된다.

보장성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는 덴마크로 85%였고, 영국(84.1%) 노르웨이(84.1%) 체코(84.0%) 등이 뒤를 이었다. 전체 OECD 국가 평균(71.5%)과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보장성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 백화점 식 보장이 보장성 떨어뜨려

건강보험 재정은 2001년 8조9000억 원에서 지난해 32조1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2020년에는 87조4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거둬들이는 만큼 지출도 많은 구조로 변하고 있는 게 문제다. 현재 시스템이 ‘백화점 식’으로 모든 질환에 혜택을 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감기 같은 경증 질환, 입원환자 식대 등 질병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건강보험 재정 적자를 줄이려면 암처럼 돈이 많이 드는 중증질환의 보장성을 줄일 수밖에 없다.

급성백혈병에 걸려 면역력이 떨어지는 환자가 곰팡이의 일종인 칸디다균에 감염됐다고 가정하자. 의사와 환자는 신약을 쓰고 싶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약은 1960년대에 나온 ‘암포테리신’이다. 오석중 강북삼성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외국에서는 이 약을 아이들에게 쓰면 신장을 다칠 수 있어 쓰지 않는다”라며 “그런데도 우리는 건보 재정 절약이란 명분 때문에 다른 신약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감기에 대한 건보 혜택만 줄여도 연간 2조 원 이상의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그 돈으로 실질적인 보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 교수는 “모든 사람에게 찔끔찔끔 나눠서 지원해 주다 보니 정작 돈을 써야 될 중증 환자에게 재원이 집중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매년 건강보험이 암 환자를 위해 지출하는 돈이 3조 원이 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증 질환을 줄여 중증을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은 충분한 셈이다.

○ 의료쇼핑 줄이고 건보료 올려야

현재 65세 이상 노인들에 대한 의료 혜택이 ‘의료쇼핑’으로 이어져 건보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노인들은 진료비가 1만5000원 이하일 때 1500원만 본인이 부담한다. 이 ‘외래 본인부담정액제’는 1986년에 처음 도입됐다. 한때 등락이 있었지만 노인 외래진료비는 26년째 1500원이다. 이 때문에 “찜질방에 가는 것보다 물리치료실에 가는 비용이 훨씬 싸다”며 의료쇼핑을 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들어 노인에게 들어가는 의료비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2009년의 경우 건보 재정 29조9400억 원의 30.5%(12조391억 원)가 노인 의료비에 쓰였다. 이 가운데 1조7500억 원이 노인 외래진료비였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현재 건강보험료 수준이 외국보다 낮다는 점을 지적한다. 보험료를 더 내고, 혜택도 더 받는 쪽으로 건강보험을 구조조정 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국내에서는 소득의 5.8%를 건강보험료로 내고 있다. 반면에 프랑스와 독일은 소득의 15%를, 일본과 대만은 8%를 내고 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보장성이 높은 국가들은 그만큼 보험료를 더 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현재의 낮은 보험료 수준을 올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정 교수는 “환자들의 체감 의료비를 낮추려면 현재 비급여 항목으로 돼 있는 진료에 대해서도 정밀하게 분석한 후 건강보험 항목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영석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엔 선거와 맞물려 보장성을 늘리려는 시도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우리 건강보험 시스템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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