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명령 ‘벌’ 재능기부 ‘덤’… 특기 살린 사회봉사 석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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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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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 코치된 축구선수… 영정사진 찍는 사진가
“벌서러 왔다 맘주고 갑니다”

기물 파손 혐의로 집행유예와 8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은 아마추어 사진작가 배모 씨가 경북의 한 요양원을 찾아 치매와 뇌중풍을 앓고 있는 노인의 영정사진을 찍고 있다. 법무부 제공
기물 파손 혐의로 집행유예와 8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은 아마추어 사진작가 배모 씨가 경북의 한 요양원을 찾아 치매와 뇌중풍을 앓고 있는 노인의 영정사진을 찍고 있다. 법무부 제공
“선생님이랑 계속 축구하면 좋은데 선생님이 가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아요. 선생님 다음에도 축구하고 싶어요.”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돼 집행유예와 함께 2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은 전직 프로축구 선수 김모 씨가 지난해 12월 받은 감사 편지들이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매주 수요일에 김 씨로부터 축구를 배운 부산의 한 보육원 어린이들이 보냈다. TV에서만 보던 프로축구선수와 꿈같은 시간을 보낸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보호관찰소 관계자는 “사회적 비난에 잔뜩 움츠려 있던 김 씨가 봉사를 마친 뒤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는데…’라며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사회봉사명령이 ‘재능기부’를 닮게 된 건 2009년 9월 벌금을 사회봉사명령으로 대신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법 시행 덕분이다. 법무부 보호관찰과는 특례법 시행 2년 만인 지난해 10월부터 사회봉사명령 대상자의 ‘특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 배모 씨는 기물 파손 혐의로 집행유예와 8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고 인생을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경북 김천시 조마면의 한 요양원에서 치매·중풍을 앓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30명의 영정 사진을 찍게 됐기 때문이다.

강제적인 사회봉사여서 배 씨도 처음엔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한복 매무시를 곱게 다듬는 할머니들과 휠체어를 타고 수줍게 웃는 할아버지들을 보고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한다. 간혹 카메라 앞에서 눈물짓는 노인들에게 배 씨는 “영정 사진이 아니라 생전에 고운 모습 기억하기 위해 찍는 ‘장수 사진’이니까 환하게 웃으세요”라며 달래곤 했다.

금융회사에서 전화사기(보이스피싱) 피해 예방 업무를 담당하다가 교통사고로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은 강모 씨는 한 사회복지관에서 70여 명의 노인에게 보이스피싱 예방교육을 마친 뒤 자신의 일과 인생에 대한 책임감이 남달라졌다.

강호성 법무부 보호관찰과장은 “특기를 살린 사회봉사명령 제도를 시행해 보니 봉사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훨씬 적극적이어서 봉사를 하는 쪽이나 받는 쪽의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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