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만 준다면… 바지사장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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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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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감옥 갈수도…” 2040 ‘슬픈 구직’

올해 9월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바지사장 카페의 초기화면.
올해 9월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바지사장 카페의 초기화면.
“‘바지사장’(실질적 소유주나 경영주가 아니라 사장 명의만 빌려주는 사람) 할 수 있습니다. 신용등급은 6등급, 신용불량자는 아닙니다.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돈만 많이 주신다면 감옥도 갈 수 있습니다.”

A 씨(21·무직)는 지난달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런 글을 올렸다. 바지사장은 성매매업소나 사설도박장 등 불법 업소를 운영하는 업주가 단속을 당했을 때 대신 처벌을 받는 명의상 업주. 실제 업주는 다른 바지사장을 구하면 영업을 계속할 수 있다.

A 씨는 2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전과가 하나 있어 취업이 잘 되지 않고… 빚도 많아 당장 목돈이 필요하다”며 “돈만 많이 준다면 2, 3년 정도는 감옥에 다녀올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 유혹에 빠지는 2040


실업난이 장기화되자 바지사장까지 마다하지 않고 구직활동을 하는 ‘2040세대’가 늘고 있다. 과거에는 노숙인이나 행방불명자의 명의를 구해 바지사장으로 내세웠지만 동아일보가 접촉한 바지사장 희망자 10여 명은 대부분 경제활동 주력인구인 ‘사지 멀쩡한 2040세대’였다.

이들은 “이름만 빌려주고 목돈을 만질 수 있는 바지사장의 유혹은 외면하기가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도 ‘바지사장님 모십니다’ 등의 이름을 내건 바지사장 구직, 채용 전용 커뮤니티 10여 개가 운영되고 있었다. 구직 글이 일주일에 서너 건씩 올라오는데 대부분 2040세대가 쓴 글이었다. 일반인을 바지사장으로 세우면 신용불량자나 노숙인을 내세우는 것과 달리 의심을 피할 수 있어 업주들도 선호한다.

광주에서 아내와 함께 네 살배기 딸을 키우고 있는 박모 씨(30)도 최근 ‘바지사장 자리를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택배기사도 해봤지만 100만 원 남짓한 월급으로는 가족을 부양하기 벅찼다. 박 씨는 빚이 늘고 취업도 힘들어지자 글을 올린 것이다. 하루 만에 몇 군데서 전화가 왔다. 해외에 서버를 둔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 업주는 “(박 씨 명의의) 은행 계좌를 빌려주면 하루에 4만 원씩 주겠다”고 했다.

○ 바지사장도 똑같이 처벌


일부 중소기업도 탈세 목적으로 바지사장을 내세운다. 개인사업을 하다 최근 부도가 난 김모 씨(43)는 딸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카페에 글을 올렸다. 며칠 뒤 고철을 모아 대형 제철소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업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업주는 “이 바닥 회사 중 10% 정도는 바지사장을 세우고 있어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안심시키기도 했다. 경찰은 명의만 빌려준 바지사장이라고 해도 형사처벌을 피하거나 구제될 수는 없다고 경고한다. 서울시내 경찰서의 한 간부는 “가급적 실제 업주까지 처벌하는 것을 목표로 수사하지만 법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어 바지사장만 처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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