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감미료’ 사카린, 규제 20년만에 달콤한 부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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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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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사용기준 완화 검토

대전에 사는 주부 양여숙 씨(55)에게 사카린은 세상 떠난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이름이다. 전기도 안 들어오던 충북 보은의 산골소녀 양 씨는 아홉 살 때 난생처음 아버지 손을 잡고 고모가 살던 대구로 기차여행을 떠난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지쳐 대구역 광장에 주저앉은 어린 딸을 위해, 아버지는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파는 시원한 냉차 한 잔을 건넨다. 새콤달콤한 그 맛은 대도시가 안겨준 문명의 별천지.

“사카린 탄 보리차잖아요. 그야말로 불량식품이지(웃음). 그래도 여름만 되면 친정아버지가 사 주신 냉차 생각이 나요.”

사카린은 탄생 이후 132년 내내 굴곡이 많았던 감미료다. ‘단맛만큼은 최고’라는 찬사와 ‘발암물질’이라는 손가락질을 함께 받으며 정부 정책도 수십 년간 오락가락했다. 설탕이 귀하던 시절에는 사카린을 쓰라고 정부가 권하다가, 인체에 해롭다는 연구가 신문 지면을 장식하면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추억의 감미료’ 사카린이 다시 등장한다. 기획재정부는 30일 기업환경 개선 대책의 일환으로 사카린 사용 기준 완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김치, 어육가공품, 시리얼, 젓갈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사카린을 앞으로 술, 케첩, 양조간장, 잼, 껌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사카린은 인체에 해가 없다”고 하지만 수십 년간 불량식품으로 덧씌워진 굴곡진 이미지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여 당분간 논란이 예상된다.

○ 사카린, 굴곡의 역사


사카린 유해성 논란은 국내에 처음 사카린이 들어온 일제강점기부터 있었다. 동아일보 1924년 6월 10일자는 “근래 사카린과 각종 착색술을 사용한 음료수가 판매돼 본정서(경찰서)에 검거된 자가 최근 3명이다”라고 보도했다. 1960년대 어렵던 시절 ‘단맛을 내지만 몸에는 안 좋은 화학물질’로 알려지다가 1966년 한국비료가 건설 자재를 가장해 사카린을 밀수한 사실이 파장을 일으키면서 이미지가 더 나빠졌다. 1977년 캐나다 국립 보건방어연구소가 쥐를 대상으로 한 사카린 실험에서 방광암에 걸린 쥐가 나왔다고 발표하면서 유해성 논란은 절정에 달했다. 미국과 캐나다 정부에서는 즉각 사카린 사용을 규제했다. 국내에선 한발 늦었지만 1990년부터 사카린 사용이 엄격히 제한됐다. 1992년 아이스크림, 껌, 과자류, 간장 등 거의 모든 제품에 사카린 사용이 금지되며 퇴출 직전까지 몰렸다. 사카린 제조업도 사양사업이 되면서 중소기업인 ㈜JMC 한 곳만 사카린 생산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 수요의 80%는 수입으로 대체됐다.

○ 유해성 오명 벗으려나

최근 보건학계에서는 사카린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2000년 국제암연구소와 미국 독성학 프로그램은 사카린을 발암물질 항목에서 제외했고,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2010년 12월 사카린을 유해물질 항목에서 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올해 초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누구나 커피에 넣어 마시는 사카린이 환경적으로도 유해하지 않다고 판단한 EPA가 현명했다”며 규제 철폐의 성공 사례로 꼽았다.

정부가 사카린 사용기준을 완화하려는 것은 이런 국제적 추세에 발맞춘 것이다. 유복환 재정부 정책조정국장은 “소비자들이 사카린을 먹을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규제 때문에 아예 못 먹게 돼 있다”며 “정부가 이를 용기 있게 개선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카린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주무 관청인 식품의약품안전청 관계자는 “미국은 우리와 비슷한 수준에서 사카린을 허용하고 있지만, 유럽연합(EU)과 일본은 우유, 아이스크림, 제과류에도 사용하는 등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윤희 한국소비자원 국장은 “식품첨가물은 식품 가공 시 기술적인 효과를 위해 최소한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안전하다고 해서 건강한 것은 아니며 사회적인 용인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 사카린 ::

1879년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이 화학 실험 중 우연히 발견한 물질이다. 설탕을 뜻하는 라틴어 ‘사카룸(saccharum)’에서 이름을 따왔다. 설탕보다 당도가 300배나 높으면서 칼로리는 거의 없고 값이 싸 빠르게 대중화됐다. 하지만 수십 년간 유해성 논란으로 상당수 식품에 사용이 금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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