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무대의 老年, 객석의 老年을 위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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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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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노인들… 서울 ‘실버 공연단’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 1층 치매 노인 보호 시설인 데이케어센터에서 실버공연단원 16명이 치매 노인들 앞에서 뮤지컬을 선보이고 있다. 공연 막바지에 단원들이 노래를 하며 손뼉을 치고 있는 모습. 서울문화제단 제공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 1층 치매 노인 보호 시설인 데이케어센터에서 실버공연단원 16명이 치매 노인들 앞에서 뮤지컬을 선보이고 있다. 공연 막바지에 단원들이 노래를 하며 손뼉을 치고 있는 모습. 서울문화제단 제공
“아니, 당신은 누구신데 우리 집에 있는 거요?”(할아버지 배우)

“젊을 때 그렇게 속을 썩이더니 이제는 치매에 걸려 날 괴롭히는구먼!”(할머니 배우)

“이 사람들아 왜 여기서 싸우냐고. 당장 나가!”(치매 관객)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 1층 치매 노인 보호 시설인 데이케어센터에서 실버공연단원 16명이 치매 부부를 소재로 한 뮤지컬을 선보였다. 관객인 치매 노인 30여 명은 간간이 박수를 보내다가도 공연에 너무 몰입했는지 부부싸움 장면을 보면서 “나가서 싸우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 뮤지컬 열정으로 뭉친 실버 공연단


실버 공연단은 ‘사랑사랑 내 인생의 사랑아’라는 제목의 뮤지컬을 올해 4월부터 연습해 이날 두 번째로 공연에 나섰다. 부부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를 때 모든 단원이 나와 흥겨운 음악에 맞춰 같은 동작의 춤을 췄다. 음악이 끝나면 재빨리 배역을 맡은 단원이 등장해 연기에 몰입했다.

이런 공연을 위해 단원들은 수요일마다 2시간씩 연습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공연에 쓸 의상과 음악도 마련했다. 공연단에서 ‘애들’로 분류되는 박영란 씨(60·여)는 이날 감기 몸살로 노래 중간 목소리가 갈라지기도 했지만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곡을 마무리해 큰 박수를 받았다. 공연이 끝나자 출연진이 모두 나와 그룹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은 전문 뮤지컬 배우 못지않았다.

여주인공을 맡은 전직교사 이경자 씨(71)는 “젊을 때는 꿈만 꾸었고 시도도 못해보다가 이제 무대에 서보니 다시 사는 느낌이 든다”며 “손주들이 ‘우리 할머니는 배우’라고 자랑할 때는 얼굴이 상기될 만큼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강병화 씨(75·여)는 “시립 무용단 합창단 교향악단이 있는 것처럼 고령화시대에 맞춰 노인 단원으로 편성한 전문 노인공연단을 만들 때가 됐다”며 “나도 조금만 더 익히면 전문 배우가 될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 노인 위한 청춘예술대학


이 공연단은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2008년부터 실시 중인 ‘꿈꾸는 청춘예술대학’ 프로그램의 하나다. 시내 각 구별로 노인들이 음악 미술 무용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를 배워 무대에 오르거나 봉사활동에 나서도록 지원하는 정책이다. 2008년 18개로 시작했는데 올해는 27개로 늘었다. 인형극, 연극, 동화구연, 춤, 미술, 영상, 잡지 발행 등 분야도 다양하다.

서울시와 재단은 문화교육 단체에 지원금을 주고 전문 강사들이 노인을 지도하게 한다. 이렇게 특정 분야의 문화적 재능을 익힌 노인들은 주로 노인들을 찾아가 자신들의 기량을 선보인다. 문화를 매개로 노인들이 다른 처지의 노인을 이해하는 계기도 된다.

어려운 점도 적지 않다. 고령이다 보니 단원 중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남은 단원들이 한동안 충격에 빠져 연습에 차질을 빚기도 한다. 몸이 아파 빠지는 단원이 생겨 연습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실버 공연단을 지도한 문화교육단체 소풍의 황윤미 씨(32·여)는 “종종 문제가 생기지만 단원 모두의 열정이 해결해준다”며 “기본 이상을 익힌 단원들이 고난도 동작을 가르쳐달라고 해 우리도 힘들다”고 말했다.

올해 청춘예술대학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노인들은 26일 오후 2시부터 서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수료식을 개최한다. 뮤지컬을 공연했던 실버 공연단을 비롯해 올해 참여했던 27개 팀이 모두 모여 그동안 익힌 기량을 제대로 된 무대에 올린다. 안호상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보는 것에서 참여하는 것으로 발전한 노인 문화가 이제는 지역 내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세대 간 소통의 창구로도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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