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만 내면 “합격” 수업 들으면 “A”… 대학교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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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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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입생 충원율 66%… 김제 벽성대의 부실 실태

입학원서를 내면 100% 합격을 보장하고 대충 수업만 들으면 A학점을 주는 대학이 있다. 신입생이 덜 모이면 학과를 없애고 과의 간판을 바꿔 신입생을 모집한다. 신설 학과 교수가 학생을 데려오지 못하면 채용을 취소한다.

▶본보 18일자 A1면 참조
A1면 “학위 장사하는 우리 대학을 고발합니다”


2009년 ‘경영부실사립대’로 판정받은 전북 김제시 벽성대의 실상은 학원과 다를 바 없었다. 이는 동아일보가 21일 단독 입수한 이 대학의 2006∼2010년 경영컨설팅 자료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컨설팅은 한국사학진흥재단의 의뢰로 한국생산성본부가 실시했다.

○ ‘만학도는 왕’ 학점 퍼주기

이 대학의 신입생 충원율은 66%(2009년 기준)다. 전북의 다른 전문대(81∼100%)보다도 턱없이 낮다. 16개 학과(주·야간 23개 과정) 중 5개 학과의 주간 과정에 신입생이 한 명도 없다. 캠퍼스가 두 개라지만 강의실 절반이 사용되지 않았다. 낮에는 전체 강의실의 80%가 텅 비어 있다.

고교 졸업장만 있으면 바로 합격이다. 치위생과를 제외한 모든 학과가 면접 100%로 신입생을 뽑았다. 학점도 후하다. 전공과목 수강생의 67%가 A학점을 받았다. 전국 전문대 평균 45%보다 20%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교양과목 학점 퍼주기는 더 심하다. 교양과목 A학점 비율이 무려 75%(전문대 평균 44%)다.

입학하기도 쉽고, 학점 따기도 쉬우니 재학생 대부분이 30대를 넘긴 만학도다.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입학한 사례는 12%에 불과하다. 20대는 22%뿐이다. 재학생 80%가 30∼50대로 대부분 수업에 참여하기 어려운 직장인이다.

대학 관계자는 “(학생들이) 내가 학교 장사 시켜주는데 학점 잘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대놓고 요구한다. 학교도 최대한 편의를 봐주라고 지시한다. 우리 대학에서 만학도는 왕이다”라고 말했다.

벽성대 정문.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벽성대 정문.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교수는 봉’ 신입생 못 데려오면 해고

만학도가 ‘왕’이라면 교수는 ‘봉’이다. 학과는 16개지만 전임교원(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은 22명에 불과했다. 3개 학과는 교원이 아예 없었다. 전산통계 교수가 사회복지상담과 수업을 맡는 등 7개 학과에서 교수 전공과 학과가 일치하지 않았다. 전공을 전환할 때 적용하는 원칙도 없었다.

교수 평가의 기준은 딱 하나. 바로 신입생 유치 능력이었다. 대학이 2012년 적용을 목표로 추진 중인 교수 성과연봉제의 평가지표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신입생 충원율이다.

신설 학과 교수 채용 때 ‘정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채용을 취소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기존 교수들도 부담은 컸다. 20∼25명의 신입생이 확보되지 않으면 바로 폐과 결정이 내려지고 교수들은 학교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등록을 마친 합격생이 있어도 정원이 모자라면 바로 문을 닫는다. 교수들이 ‘발에 땀이 날’ 정도로 신입생 유치에 전념하는 까닭이다.

○ 교과부는 수수방관

교육에 투자를 할 리 없다. 재단 전입금은 0원이다. 부실 대학으로 판정받은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 3, 4년간 구입한 교육기자재는 책걸상이 전부다. 1990년대 중반 지은 강의동은 관리 및 보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심하게 낡았다. 교내에 복사실 서점 보건실도 없어 주간 과정 재학생들은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취한 조치라고는 컨설팅 비용 2억 원을 지원한 게 전부다. 국고가 들어갔지만 사후 관리는 하지 않았다.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대학 측은 올 6월 △교수 대거 채용 △시설 투자 증대 △1개 캠퍼스 처분 등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구조조정 방안을 제시했지만 실현가능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교과부는 연말에 퇴출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최근 대학구조개혁위원회의 부실대 선정과 맞물리면서 오히려 수명이 연장됐다.

이경희 기자 sorimo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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