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모르는 ‘캄캄 재난경보’… “대피-점검할 곳 구체적으로 알려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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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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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재난관리시스템 점검… 5대 제언“산사태 위험” 문자 메세지 왔다… 어느 山?“재해예방 철저히 하라” 또 왔다… 어떻게?

지난달 26일 산림청이 강원 춘천시 산림방재과 직원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춘천시 제공
지난달 26일 산림청이 강원 춘천시 산림방재과 직원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춘천시 제공
‘비상근무 체제 확립.’

‘야영객 대피.’

‘재해위험지역 순찰 및 주민 대피 준비.’

9일 전북 정읍시 등 남부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리자 소방방재청은 국가재난관리시스템(NDMS)을 통해 전북도에 하루 새 무려 20여 건의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말 그대로 원론적인 내용일 뿐 구체적인 지시는 전혀 없었다. 정읍군 등 전북지역 공무원이 총동원돼 다행히 7000여 명의 주민을 긴급 대피시켜 인명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NDMS만 믿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부가 자연재해와 재난에 대비해 운영하는 방재관리 시스템이 ‘시늉’에 그치고 있다. 형식적인 지시가 대부분이어서 현장에서 대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① NDMS 정보 더 넣어라

NDMS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본부장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와 각 지방자치단체, 소방방재청 등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재난상황 관리를 총괄하는 시스템이다. 총 264억 원을 투입해 2006년 완성한 한국의 대표 방재시스템이다.

NDMS의 가장 큰 문제는 ‘재해위험지역 정보’에 주소와 이름 등 간단한 자료만 입력돼 있다는 것이다. 산사태위험지구 등 8개 재난우려지역은 해당 지자체에서 직접 등록해야 하는데 입력 항목이 주소지와 위험성, 관리주 등으로 형식적이었다. 정작 필요한 경사도, 옹벽높이, 주변 나무의 밀도, 석축과의 거리, 주민 수, 대피경로 등은 입력 항목조차 없었다. 구체적인 행동요령을 전달하기 위해 참고할 자료가 부족한 셈이다.

이동우 공주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NDMS는 만들어질 때부터 주택, 도로 건설 등으로 변하는 현장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며 “변화되는 상황과 세세한 정보까지 모두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② 방재 지시 구체화하라

지난달 26일 오후 8시 10분 강원 춘천시 전역에 호우주의보가 발효됐다. 15분 뒤 춘천시 산림과장 등 3명에게 산림청에서 보낸 산사태 경고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귀 관할구역은 산사태 위험(주의보) 대상지역입니다’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춘천시 공무원의 대응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 날 0시 8분.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에서 산사태가 나 펜션을 덮쳤다. 봉사활동을 하던 인하대 학생 10명 등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춘천시는 시 면적의 80% 이상이 산사태 위험 1∼3등급인 산림이다. 이정철 춘천시 산림방재담당은 “춘천에 산이 수백 개 있는데 메시지에 구체적 내용이 없어 어디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몰라 현장 대응이 어렵다”며 “다른 지자체도 같은 고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풍 ‘무이파’가 한반도를 덮친 6일에도 NDMS는 ‘사전 순찰과 주민 강제 대피조치, 피서객 사전 대피, 해일 우려지역 선박 대피, 야외활동 자제’ 등 ‘뻔한 내용’만 내려 보냈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지시 내용을 확인했다고 회신만 하면 후속 조치가 없어도 문제가 없기 때문에 대응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③ 방재 컨트롤 타워 만들자

방재 업무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학은 한국방재학회장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소방방재청만으로는 지자체 전체를 상대로 재난 업무를 조율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하는 것처럼 부처를 초월해 방재 업무를 총괄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④ 전달 체계 업데이트하라

지난달 27일 수도권 집중호우 때 우면산에서 산사태가 나 16명이 숨졌을 당시 산림청이 사전에 경고메시지를 보냈음에도 서울 서초구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도 재난정보의 사전 전달시스템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초구 담당자가 연락처를 제때 업데이트하지 않아 경고 메시지조차 받지 못한 것은 한국의 방재전달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원호 광운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해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데는 무엇보다도 담당 공무원의 나태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메시지의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계속 방치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양치기 소년’처럼 돼버린 문자메시지에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⑤ 인력과 예산 늘려라

인력과 예산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무이파가 강타한 제주시의 재난관리담당 직원은 전체의 0.4%인 6명에 불과하다. 다른 지자체의 사정도 비슷하다. 한 지자체의 방재담당자는 “팀장 1명, 직원 2, 3명이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힘든 일이 많아 방재 분야는 기피 부서로 꼽힌다”고 말했다. 국립방재연구소의 연구인력도 22명에 불과해 건설기술연구원 417명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김중훈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는 “한국의 방재 관련 연구개발(R&D) 예산은 전체 R&D 예산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며 “방재 관련 R&D 투자를 늘리고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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