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서울 집성촌 12곳 ‘힘겨운 명맥잇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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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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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하면 벽지의 시골마을을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인구 1000만 명의 대도시인 서울에도 여전히 집성촌이 남아 있다. 특히 서울 서초구에는 경주 김씨를 비롯해 남양 홍씨, 경주 최씨, 해주 오씨 등 집성촌이 5곳이나 있다.

하지만 최근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이뤄지면서 이들 집성촌 역시 갈수록 해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와 일선 구 역시 이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집성촌 유지를 위해 따로 지원책을 마련하지는 못하고 있다.

○ 서울시내 집성촌은 12곳


4일 서울시에 따르면 6가구 이상이 모여 사는 곳을 기준으로 집성촌은 12곳이다. 서초구 내곡동 능안마을에는 경주 김씨 20∼25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내곡동 인근 홍씨 마을에는 남양 홍씨 14가구가 살고 있다. 또 서초구 신원동 본마을에는 경주 최씨 6가구가, 서초구 원지동 청룡마을에는 해주 오씨 35가구가 살고 있다. 내곡동에서 서북쪽으로 2.5km가량 떨어진 염곡동 염통골에는 창녕 조씨 후손도 35가구나 모여 산다.

서초구 내곡동 일대 집성촌에는 1978년 취락구조 개선 이전까지는 마을마다 100∼150가구가 모여 살았다. 서로 건넛마을에 살다 보니 오씨와 최씨, 김씨, 홍씨 집안은 사돈으로, 사돈의 사돈으로 얽혀 사는 경우가 많다. 강북구 우이동에 터를 잡은 원주 원씨 마을은 고려 말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 집성촌이다.

1996년 서초구는 일제강점기 이후 호적을 한 번도 옮기지 않은 토박이 집성촌 주민에게 ‘서초 토박이증’을 발급해주기도 했다.

○ 급속한 도시화…집성촌 해체 위기

하지만 빠르게 진행된 서울의 도시화와 주택 개발로 이들은 결국 짐을 싸서 도시 외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초 강서구에서 집성촌을 이룬 풍산 심씨 후손은 지방문화재인 ‘문정공파묘역’만 남겨두고 뿔뿔이 흩어졌다. 불과 2년 전까지 경주 최씨 300여 가구가 살던 외발산동 광명마을도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자취를 감췄다. 보금자리 주택지구로 선정돼 점점 사라지게 된 집성촌도 있다. 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강남구 세곡동 은곡마을은 보상이 끝난 현재 20가구만 쓸쓸히 남아있다. 중랑구 망우동 양원마을의 동래 정씨 후손 38가구도 지난해 하반기 오랫동안 살던 터전을 보금자리 주택 공사 때문에 내줘야 했다.

서초구 내곡동 홍씨 집성촌에서 지난해까지 20년째 통장을 맡았던 홍성동 씨(55)는 “집성촌은 그린벨트와 도시화로부터 전통을 지켜낼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며 “농업에 의존했던 주민이 개발과 수입 감소에 떠밀려 가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나각순 위원(56)은 “집성촌은 생계 기반이 비슷하다는 특징이 있다”며 “서울의 집성촌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생업구조가 파괴돼 사실상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설명했다. 나 위원은 “현 시점에서 집성촌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려면 ‘관혼상제’의 과정을 잘 이어나가야 한다”며 “제사 등 기본적인 가족행사에서 가족끼리 지속적으로 모일 수 있는 내부동력과 함께 구나 동 단위로 자치단체가 정책적 지원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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