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MASSI/한국형 원조 노하우 찾아라]<6·끝>세계는 원조 경쟁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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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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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이타바시 구의 아사히정기공업에서 태국의 한 연수생(오른쪽)이 금형기술을 배우고 있는 모습. 개발도상국의 인재 육성을 목표로 한 기술협력은 일본의 공적개발원조(ODA) 정책의 핵심 축이다. 사진 제공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도쿄 이타바시 구의 아사히정기공업에서 태국의 한 연수생(오른쪽)이 금형기술을 배우고 있는 모습. 개발도상국의 인재 육성을 목표로 한 기술협력은 일본의 공적개발원조(ODA) 정책의 핵심 축이다. 사진 제공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 미국 컬럼비아대 제프리 삭스 교수는 “원조는 수혜국뿐 아니라 제공국에도 큰 이익을 준다”고 했다. 바로 국격 상승과 새로운 윈윈 비즈니스 기회다. 원조는 단순한 베풂이 아니다. 세계화시대를 주도해가기 위해 반드시 짜야 할 국제 전략이다. 원조 선진국인 일본의 전략, 큰손으로 부상한 중국, 세계 원조전문가들의 한국에 대한 기대를 소개한다. 》‘개도국 원조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1950년대부터 개도국 원조에 활발히 참여해 온 해외원조 선진국 일본은 요즘 해답을 돈이 아닌 인재 육성에서 찾고 있다. 유상원조나 무상원조보다 개도국의 경제 사회 개발을 담당할 사람을 키우는 ‘기술협력’이 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 해당하는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아사쿠마 유미코(朝熊由美子) 기획과장은 “일본이야말로 개항 이후 구미 선진국의 기술을 받아들여 성공한 국가”라며 “인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오래전부터 인재 교육에 힘써 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9년 일본의 공적개발원조(ODA) 순지출(5603억 엔) 중 기술협력이 53%(2942억 엔)를 차지한다. 초청 연수, 전문가 파견, 기자재 공급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진다. 이 중 초청 연수가 핵심. 지난해 연수생은 1만2000여 명. 아사쿠마 과장은 “1954년부터 지난해까지 150여 개국에서 45만 명이 다녀갔다”고 소개했다.

일본의 연수프로그램은 철저히 수원국 요구에 맞춰 짜인다. 프로그램도 계획하에 이뤄진다. 일례로 중앙아프리카삼림협의회(COMIFAC) 가맹국이 2008년 일본 정부에 삼림보호 교육 프로그램을 요청해 기획된 프로그램은 JICA가 1년이나 관계국과 협의를 거쳐 만든 것. 일본 외무성과 JICA는 매년 하반기 개도국이 원하는 연수주제와 연수형식 등을 조사해 계획에 반영한다.

미타무라 다쓰히로(三田村達宏) JICA 국제협조협력과 주임조사역은 “전 세계 80여 개국(KOICA는 43개국)에 있는 JICA 지사를 통해 개도국 요구사항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고 있다”며 “각 프로그램은 3년 단위로 기획되므로 장기적인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프로그램 종류도 농림수산, 에너지, 보건의료, 사회복지 등 500종이 넘는다. 공해문제 해결 경험이 있는 규슈지역은 환경문제, 해양 관련 산업이 발전한 요코하마는 해양문제, 부품소재 산업이 발달한 오사카는 산업분야 연수를 진행하는 식으로 연수도 일본 각 지역 특성에 맞게 설립된 11개 센터에서 진행된다.

일본은 원조전략도 명확한 국가 목표와 통일된 지휘 아래 추진하고 있다. 외무성이 올해 정한 국제협력 중점방침은 수원국 소득수준, 경제성장률과 함께 자원 매장량도 고려한다는 것이다. 원조를 하더라도 자원외교 등 국익과 연관짓는다는 전략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다.

사후평가 시스템도 철저하다. 외무성이 정책 전반을 평가하고 JICA가 프로젝트 단위별 평가를 한다. 초청연수사업의 경우 연수 참가자들로부터 결과보고서를 취합해 평가하고, 외무성은 전체 목표에 부합했는지 평가한다. 평가 기준은 적실성, 효율성, 효과성, 영향력, 지속가능성 등으로 체계화돼 있다. 제3의 평가기관에 평가를 의뢰하거나 전문가들을 외부평가단에 포함시켜 객관성을 높이고 있다.

한편 일본은 2008년 10월 그동안 JICA=기술협력, 외무성=무상원조, 국제협력은행(JBIC)=유상원조로 나뉘었던 원조 조직을 JICA로 통합했다. 오랜 경기침체로 ODA 예산이 급격히 줄면서(2008년은 1997년의 60% 수준) 재정의 방만한 외부 유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어 이런 통합이 이뤄졌지만 그 결과 원조효율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 中, 융단폭격식 물량공세… 원조 큰손 떠올라 ▼
고속도로 등 SOC 중심… 집행 빠르고 요구조건 없어


중국이 국제원조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지난해 8월 파키스탄 수재 발생 직후 역대 최대 무상원조 액수인 2억4700만 달러를 보냈을 정도다. 외환보유액 2조5000억 달러(2010년 11월 말 기준)라는 넉넉한 곳간이 재원이다. 상무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1950년∼2009년 말 164개 국가와 지역조직에 2100여 개 항목을 지원했다. 지원된 인력도 74만 명에 이른다. 미국 의회조사국(CSR)은 중국 원조에 대해 ‘집행이 빠르고 요구조건이 없어 수원국의 환영을 받고 있다’고 했다.

주로 정부종합청사, 경기장, 고속도로 건설 등 막대한 하드웨어 투자가 특징이다. 눈에 잘 띄고 단기간에 효과를 보는 것들이다. 실제로 캄보디아엔 지난 4, 5년간 정부종합청사, 총리 관저, 대형 교량 등이 중국의 지원으로 건설됐다.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한 원조전문가는 “중국은 영수증도 필요없다. 융단폭격 식 물량공세라 할 만하다”고 했다.

하지만 수원국의 만족도는 그리 크지 않다. 캄보디아 원조기관 관계자는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이발 청소 요리사까지 다 중국에서 데려온다. 공사가 끝나면 2000명, 3000명에 이르는 근로자를 아예 눌러앉혀 현지화를 시킨다. 우리를 도우려는 게 아니라 자기네 나라 고용 창출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프놈펜=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 해외 ‘원조 전문가’ 2인의 조언
스티븐 그로프 DAC 부국장 “英 원조창구 일원화, 한국이 참고할 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의 사무국인 개발협력국 스티븐 그로프 부국장(사진)은 DAC 24개 회원국 개발원조 업무를 감독하고 평가하는 실무책임자다. 파리 OECD 본부에서 만난 그는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첫 번째 나라인 한국이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에 많은 경험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에 대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원조만으로 한국이 오늘날의 발전을 이뤄낸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다른 많은 강점이 함께 어우러져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빈곤 문제, 개발원조의 효율적 적용 등 후진국과 개도국에 다양하고 값진 교훈을 제공할 수 있다.”

그는 향후 한국이 원조정책으로 삼아야 할 원칙으로 “21세기의 새로운 지구촌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환경, 여성, 분쟁, 거버넌스 등 세계의 공통적인 당면 과제에 대한 관심과 해법 제공에 한국이 적극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덧붙여 “특히 경제개발에 관련된 행정과 관리 업무에 한국 특유의 창의력을 발휘해서 개발원조의 효과를 더욱 높이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고 했다.

그로프 부국장은 한국이 본받을 만한 선진 모델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영국과 덴마크의 통합시스템을 제시했다. “영국은 개발원조와 관련된 모든 공공행정을 국제개발부(DFID)가 관할한다. 많은 국가가 서로 다른 정부부처에 업무를 분산시켜 정책의 일관성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영국의 시도는 큰 평가를 받고 있다. 덴마크 역시 외교부에서 개발원조를 통괄하는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 제임스 폭스 美컨설턴트 “민간원조에 대한 지나친 간섭은 안좋아” ▼

미국의 원조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국제개발처(USAID)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내고 현재 원조개발컨설턴트로 일하는 제임스 폭스 씨(사진)는 이론과 실제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미국 내 원조전문가. 그는 “오늘날 한국을 만든 힘은 원조를 재원으로 국민적 에너지와 훌륭한 정치 리더십이 합쳐진 결과”라며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처럼 수원국의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발전의 원동력을 뭐라고 보나.

“1960년대 초 한국 정부는 경제성장에 정책의 온힘을 쏟았다.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함께 고민했다. 교육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둔 것도 한국이 지금은 원조 공여국이 된 데 큰 바탕이 됐다.”

―대통령의 리더십과도 상관이 있나.

“미국이 지나치게 가난한 나라를 대상으로 원조를 하면서 추진했던 민주주의 증진은 많은 나라에서 사실상 실패했다. 하지만 한국은 현명하고 강력한 대통령이 경제성장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한국의 성공사례는 경제성장을 먼저 이루고 나중에 민주주의로 옮아가는 것이 순서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에선 여러 기관이 나눠서 원조를 집행하는 문제점이 있다.

“미국도 여러 개 조직이 있다. 적어도 10개는 된다. 그러나 힘을 가진 하나의 조직이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자금흐름을 감독하고 전체 그림을 조망하는 것이 중요하다. 빌 게이츠 재단이 좋은 예다. 비록 작은 조직이지만 강하고 지성적인 지도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의 원조정책에 줄 조언이 있다면….

“민간부문 원조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게 좋다. 빌 게이츠 재단은 원조의 질을 높이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조기관에 자율권을 준 게 핵심이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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