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MASSI/한국형 원조 노하우 찾아라]<5>‘품앗이’의 세계화, 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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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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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심은 ‘품앗이 정신’, 필리핀서 ‘푸마시’로 싹트다

○“ Thank you from Korea”

#장면1. 13일 오후 2시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80km 떨어진 인구 10만 명의 농촌도시 칸다바(팜팡가 주) 근교. 허름한 가정집 뒷마당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한국인 봉사자들이 연주를 시작하자 주민 20여 명이 몰렸다. 필리핀 국가가 연주되자 집주인 프란시스코 씨(81)와 친구 빅토리아노 씨(84) 얼굴이 숙연해진다. 이들은 6·25전쟁에 참전했던 퇴역 군인들. 음악회가 끝난 후 자원봉사자들이 두 노인의 거친 발을 대야에 담고 닦아주기 시작했다. 소년 봉사자 임주연 군(13)이 편지를 읽었다. “태어나기 전이라 잘 모르지만 할아버지들이 도와준 덕택에….” 순간, 두 노인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장면1.
13일 오후 2시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80km 떨어진 인구 10만 명의 농촌도시 칸다바(팜팡가 주) 근교. 허름한 가정집 뒷마당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한국인 봉사자들이 연주를 시작하자 주민 20여 명이 몰렸다. 필리핀 국가가 연주되자 집주인 프란시스코 씨(81)와 친구 빅토리아노 씨(84) 얼굴이 숙연해진다. 이들은 6·25전쟁에 참전했던 퇴역 군인들. 음악회가 끝난 후 자원봉사자들이 두 노인의 거친 발을 대야에 담고 닦아주기 시작했다. 소년 봉사자 임주연 군(13)이 편지를 읽었다. “태어나기 전이라 잘 모르지만 할아버지들이 도와준 덕택에….” 순간, 두 노인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두 행사를 연 단체는 사단법인 H2O품앗이세계화운동본부(이하 품앗이본부). 두 행사는 지난해 9월 칸다바 시와 ‘품앗이 운동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필리핀지부를 설립하기로 한 뒤 처음 연 행사였다. 장문섭 품앗이본부 사무총장(63)은 “원조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는 사람이 진정 고마워하고 원하는 것을 준다는 원조 본래 목적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받는 사람이 자존심을 상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한국의 미풍양속 ‘품앗이 정신’을 떠올린 것”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품앗이 학교 자원봉사자들은 수업 내내 ‘필리핀이 먼저 한국을 도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필리핀은 6·25전쟁 때 군인 7400명이 참전해 112명이 목숨을 잃었다.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은 참전용사로는 유일하게 국가원수까지 지냈다. 팻 빌로리아 재향군인회장(87)은 “우리보다 못살았던 한국이 이렇게 발전한 것을 보면 보람도 느끼고 자괴감도 느낀다. 하지만 옛날 도움받았던 것을 잊지 않고 갚는다는 마음을 보여주니 도움받는 입장이라 해도 거리낌이 없다”고 말했다. 품앗이본부는 12일부터 자원봉사뿐 아니라 마닐라 내 전쟁기념관 참전용사기념비를 방문해 참배를 하고 감사 편지를 전달하는 등 각종 추모행사를 벌였다.

○ 받았으니 되갚겠다는 정신

#장면2.같은 시간, 칸다바 시내 ‘미스어스 파크’ 내 약 330m²(100여 평)짜리 단층건물에서는 수업이 한창이었다. 다름 아닌 ‘2011 Thank you from Korea 품앗이학교’ 행사다. 이날 한국인 봉사자들은 칸다바에 컴퓨터 100대를 기증하고 정보기술(IT), 풍선아트, 미용 강좌를 무료로 3일간열었다. 99m²(약 30평)가 채 안 되는 교실이 시민들로 가득 찼다. 손톱 손질 기술을 가르치는 네일아트 수업에 참가한 멜코디 마나푸 씨(21·여)는 “교육받기 전에 ‘푸마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며 “과거 필리핀이 한국을 도와줘서 갚으러 왔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뭉클해졌다”고 말했다.
#장면2.
같은 시간, 칸다바 시내 ‘미스어스 파크’ 내 약 330m²(100여 평)짜리 단층건물에서는 수업이 한창이었다. 다름 아닌 ‘2011 Thank you from Korea 품앗이학교’ 행사다. 이날 한국인 봉사자들은 칸다바에 컴퓨터 100대를 기증하고 정보기술(IT), 풍선아트, 미용 강좌를 무료로 3일간열었다. 99m²(약 30평)가 채 안 되는 교실이 시민들로 가득 찼다. 손톱 손질 기술을 가르치는 네일아트 수업에 참가한 멜코디 마나푸 씨(21·여)는 “교육받기 전에 ‘푸마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며 “과거 필리핀이 한국을 도와줘서 갚으러 왔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뭉클해졌다”고 말했다.

14일에도 품앗이 학교 수업이 계속됐다. 수업은 실무 위주로 진행됐다. IT 강좌의 경우 초등학생부터 40세 성인까지 컴퓨터를 전혀 배우지 못한 저소득층 40명이, 미용 강좌에는 해당 지역 미용사 30명이, 풍선아트에는 학교 교사 20명이 참석했다.

하루 종일 30도가 넘는 더운 날씨가 계속되다 보니 좁은 교실 안에 있던 자원봉사자들과 칸다바 시민들은 땀범벅이 됐다. 칸다바 시에는 중고등학교가 3개밖에 없어 교육 인프라가 매우 부족하다. 이 때문에 학생들의 열정도 남달랐다. 자원봉사자들은 수업 틈틈이 “여러분의 선배들이 과거 한국이 어려울 때 많은 도움을 줬기 때문에 품앗이 정신에 입각해 이제는 우리가 교육을 통해 여러분 선배들의 사랑을 갚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품앗이 운동은 ‘소프트웨어 강화’를 지향하고 있다. 제대로 돕기 위해서는 학교, 병원 등 하드웨어에 치중하는 ‘깃발 꽂기 원조’를 지양하고 수원국 시민들에게 실제 도움이 될 수 있는 교육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 IT교실에서 파워포인트 실습을 하던 조세핀 양(13)은 기자에게 연방 ‘푸마시 푸마시 굿’이라고 말했다. 조세핀 양은 “잘 배우면 졸업장과 자격증도 준다고 하니 열심히 배워서 장차 미용실에서 일하며 돈도 많이 벌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품앗이 원조는 일반 시민들에게 많이 알려진 듯했다. 학교 앞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기자가 ‘품앗이’를 아느냐고 물으니 ‘푸마시’ ‘푸마시’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지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봉사자들의 만족도도 컸다. 풍선아트 교실에서 만난 송동명 한국풍선문화협회장(40)은 “품앗이 정신을 세계에 심는다는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며 “일단 왜 돕는가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니 필리핀 사람들을 볼 때도 동정심보다는 나 역시 감사하다는 마음이 먼저 든다”고 말했다. IT강사로 참석한 회사원 조혜리 씨(25)는 “언뜻 국제원조라고 하면 상대방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보다는 돕는 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는 경향이 강했던 것 같다”며 “하지만 품앗이 마음으로 교류가 되니 진심이 통해 진정한 도움을 주게 된다”고 전했다.

3일 동안 이어진 교육이 끝나고 14일 열린 졸업식은 수강생들과 봉사단원들 사이에 정이 많이 들었는지 눈물바다가 됐다. 품앗이 원조의 또 다른 장점은 이처럼 도움을 받은 사람이 나중에 되갚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그런 점에서 일대일로 끝나는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와 차원이 다르다. IT교육에 참석한 레지엘 씨(23·여)는 “나중에 내가, 나아가 필리핀이 잘살게 되면 더 못사는 나라를 돕게 될 것”이라며 “그때까지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아나 패딜라 씨(38·여)도 “한국이 고맙다”며 “지금은 우리가 어렵게 살아도 열심히 살면 언젠가 한국처럼 남을 도울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글·사진 칸다바=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품앗이 운동’ 첫 시작 칸다바市제리 펠라이요 시장▼


한국형 국제 원조인 ‘품앗이 운동’이 여러 원조 대상국 중 필리핀 칸다바 시에서 처음 시작된 데에는 제리 펠라이요 시장(54·사진)의 역할이 컸다. 필리핀 팜팡가 주 22개 시장협의회 대표이기도 한 그는 부친이 6·25전쟁 참전용사다.

2004년부터 시장 직을 맡아온 그는 지난해 9월 칸다바 시에 품앗이운동 필리핀지부를 설립하기로 H2O품앗이세계화운동본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평소 필리핀 사람들에게 자주 한국의 ‘푸마시(Pumassi)’를 설명한다는 펠라이요 시장은 14일 오후 자신의 자택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내 ‘품앗이 운동의 세계화에 동참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한국의 ‘품앗이’를 알게 됐나.

“필리핀에서 오래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인 사업가에게서 품앗이 운동을 하는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사업가의 누님이 단체회원이었다. 설명을 듣는 순간 칸다바 시에 바로 필요한 ‘무엇’이라는 느낌이 왔다. 또 사랑과 나눔을 중시하는 필리핀의 미풍양속인 ‘바이아니한(bayanihan)’ 정신과 비슷한 면이 많았다.

―품앗이 운동의 장점은….

“이제까지 필리핀을 돕겠다는 다른 나라의 국제원조 방식과 달라 많은 필리핀 사람들의 가슴에 와 닿았다. 6·25전쟁 참전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하며 우리를 돕는 방식 때문인지,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긍심이 느껴진다. 또 재난 같은 어떤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만 도와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갖고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든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향후 목표는….

“지역 내 정식으로 품앗이학교를 지을 것이다. 건물은 한국 측에서 지어주겠지만 우리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품앗이학교가 들어갈 6000여 평의 터를 우리 측에서 기부하기로 했다. 학교를 통해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교육을 강화하고 싶다. 또 필리핀 내 재단을 만들어 품앗이 운동을 전국에 확산시키고도 싶다. 우리도 한국처럼 다시 잘살게 되면 우리보다 더 어려운 제3세계 국가를 돕고 싶다. ‘푸마시 정신’을 발휘해서 말이다.”
“정-마음 나누자” H2O품앗이운동본부 1998년 설립▼

H2O품앗이운동본부는 한국의 미풍양속인 ‘품앗이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세계화하자는 목적으로 1998년 설립됐다. H2O란 ‘Human Hospitaller Organization’의 줄임말로 H 2개를 H2로 표현한 것. ‘사람을 사랑하고 돕는 단체’라는 뜻이다. 이사장 이경재 국회의원(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세계 각국 민간단체들과의 교류 증진을 통해 전 세계에 품앗이 네트워크를 구축 중이다. 국제나눔클럽, 한국풍선문화협회, 한국콘텐츠 창작가협회, 한국민속아동음악연구원 등 국내 다른 민간단체들의 지원도 받고 있다. 6·25전쟁 참전국을 중심으로 품앗이학교를 설립해 ‘교육’을 화두로 한국형 국제 원조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6·25전쟁 참전국가(21개국)에 대한 감사편지 전달 등의 문화교류 행사도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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