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감춘 조선시대 실전 활, 日 야스쿠니에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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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자취를 감춘 조선시대 실전용 활로 보이는 유물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A급 전범이 합사된 일본 야스쿠니(靖國)신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야스쿠니신사 내 유물 전시관인 유슈칸(遊就館)은 8일까지 개최하는 전시회에 이 활을 내놓았다.

‘조선궁’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된 이 활은 검은색으로 칠해졌으며 실 등으로 여러 차례 감은 흔적이 뚜렷하다. 조선 활은 활줄을 오래 걸어두면 쉽게 갈라지기 때문에 쏜 뒤에는 줄을 풀어놓지만 실전용 활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실을 감아 강도를 보강하고 그 위에 옻칠까지 했다.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활은 연습용이거나 한 번에 짧은 화살 여러 발을 발사하는 수노궁(手弩弓)이라는 특수한 활이 대부분이다. 조선시대 실전용 활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29년 발간된 ‘조선의 궁술’에 따르면 실전용 활은 실물이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활 전문 박물관인 영집궁시박물관의 유세형 궁시장 전수조교는 3일 “‘조선의 궁술’에는 활의 재료가 적혀 있지만 정확하게 어떤 모양인지,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추측만 할 뿐”이라며 “이 활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들은 것은 처음이고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영·정조 시대의 것으로 추측되며 활 모양은 전문가들이 추측하던 모습 그대로다”며 “만약 이 활이 진짜 실로 감고 옻칠을 한, 이전의 실전용 활이라면 한국 활 역사 정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야스쿠니신사는 조선시대 갑옷과 투구도 전시했다. 투구의 이마 가리개에는 ‘元帥(원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투구 위쪽에는 용과 봉황 문양(용봉문)이 붙어 있어 장수의 것으로 보인다. 갑옷의 옆트임 상태 등을 고려할 때 18∼1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슈칸 측은 1884년 갑신정변 당시 조선 민중에게 맞아 죽은 일본 군인 이소바야시 신조(磯林眞三)의 명의로 1885년 신사에 기증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국내 여러 박물관에도 이 같은 투구가 보관돼 있지만 이처럼 보존상태가 양호한 것은 드물다고 한다. 일본 약탈문화재 반환운동을 벌이고 있는 문화재환수위원회 사무처장 혜문 스님은 3일 “투구가 4, 5점 있었고 일본 육군성에서 기증한 물품도 있었다”며 “야스쿠니신사에 조선시대 유물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던 사실이고 그간 공개 전시를 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신사는 일본이 1274년 원나라와 고려의 공격을 막아낸 ‘신의 태풍’을 의미하는 ‘가미카제(神風)’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문제는 당시 일왕이 썼다는 ‘敵國降伏(적국항복)’이라는 글씨 바로 옆에 당시 상황과는 무관한 조선시대 갑옷 등을 전시해 놓았다는 점. 혜문 스님은 “전시 배치를 보면 마치 조선이 일본에 항복했다는 내용을 전달하려는 걸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는 1일 신사 측에 항의서한을 보냈다.

이번에 공개된 조선시대 유물 외에 야스쿠니신사에 어떤 한국 유물이 더 있는지도 관심이다. 그동안 국내 전문가들은 일본이 1875년 운요호사건 당시 약탈해간 활과 화포 등 군사 유물이 이곳에 소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해 왔다. 야스쿠니신사엔 조선시대 북관대첩비가 방치돼 있던 게 확인돼 일본으로 약탈된 지 100년 만인 2005년 돌려받은 바 있다.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때 함경도 의병장 정문부(鄭文孚·1565∼1624)의 왜군 격퇴를 기념하기 위해 1708년 함경도 길주(현재의 김책시)에 세워진 승전비. 1905년 일본군이 약탈해 갔으며 1970년대 이후 끈질긴 반환운동 끝에 2005년 10월 서울로 돌아왔다가 이듬해 3월 고향인 북한으로 인도됐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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