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청소년쉼터 가출체험 행사, 주은수 울산대 교수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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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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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이 청소년과 가출을 했다… 시식코너 기웃… 화장실서 토막잠

서울시립신림청소년쉼터 주최 ‘1일 가출체험’에 참여한 울산대 사회복지학과 주은수 교수(오른쪽)와 가출 청소년 A 군이 4일 밤 경기 부천시 오정구의 한 주택가 인근 놀이터에서 대화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시립 신림청소년쉼터
서울시립신림청소년쉼터 주최 ‘1일 가출체험’에 참여한 울산대 사회복지학과 주은수 교수(오른쪽)와 가출 청소년 A 군이 4일 밤 경기 부천시 오정구의 한 주택가 인근 놀이터에서 대화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시립 신림청소년쉼터
“이게 웬 횡재?”

5일 새벽 경기 부천시 오정구의 한 거리를 함께 걷던 주은수 울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36)와 가출 청소년 A 군(16)의 눈에 길바닥에 떨어진 ‘티머니 카드’가 들어왔다. 두 사람은 4일 저녁 이후 쫄쫄 굶으며 최근 기온이 뚝 떨어진 밤거리를 헤맸다. 카드에는 돈이 9000원 넘게 들어 있었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하나씩 나눠 먹은 이들은 PC방에 들어가 몸을 녹였다.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벌인 일이지만 길에서 주운 돈을 썼으니 ‘점유 이탈물 횡령’에 해당하는 엄연한 범죄다.

○ 찬바람이 옷깃 파고들어

“평소에는 놀이터나 아파트 옥상 같은 데서 잤어요. 텐트를 치기도 하고요. 찬바람을 피할 수 있는 빌라 계단도 좋아요.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녜요.”

짙은 속눈썹에 얌전한 인상을 가진 A 군이 덤덤하게 말했다. A 군은 최근 가출해 남자 가출 청소년들이 생활하는 서울시립 신림청소년쉼터에서 지내다 쉼터가 주최한 ‘2010 가출체험’에 안내자로 참여했다. 일반 성인 1명과 가출 청소년 1명이 짝을 이뤄 1박 2일을 무일푼으로 거리에서 지내는 행사다. 아동·청소년 복지를 전공하는 주 교수는 “영상 속에서만 보던 가출 청소년들의 생활을 몸으로 느껴 보고 싶어 지원했다”고 말했다.

“저기가 우리 집이에요. 아마 이 시간에는 모두 집에 있을 텐데….”

소규모 연립주택이 밀집한 거리를 지나 인근 놀이터로 향하던 A 군이 손가락으로 한 빌라를 가리켰다. 기자가 들어가 볼 것을 권했지만 A 군은 “아빠는 화가 나면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진다”며 “또 싸울 것 같아 내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A 군은 “학교는 ‘수면실’”이라고 덧붙였다.

부모와의 갈등이 지속되면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가출을 시작한 A 군은 쉼터 실무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전환형’ 가출에 속한다. 가출을 반복하다가 부모와의 관계가 틀어지고 이제는 집 나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유형이다. ‘갈등형’ 가출은 학교·가정과의 갈등 때문에 잠시 가출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말한다. ‘방임형’ 가출이 가장 심각한데, 부모의 알코올의존증이나 폭력, 학대 등 양육 환경이 파괴돼 집다운 집이 없는 아이들이 이에 속한다. 이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거리로 나온다.

○ “혼자 거리 헤매면 외로움 사무쳐요”

“별로요. 그냥 황야의 무법자?”

A 군은 “쉼터가 집은 아니지 않느냐”는 물음에 즉답을 피했다. 배가 고프면 대형마트 시식코너를 돈다. ‘삥’을 뜯거나 먹을 것을 훔치는 아이들도 있다. A 군은 ‘알바’로 생활비를 마련한다. 매일 7시간가량 전단 1300여 장을 아파트 단지나 가로수에 붙이고 5만 원을 번다.

A 군과 주 교수는 놀이터에서 40분을 걸어 인근의 대형마트에 도착했지만 시식코너는 이미 끝나 있었다. 부천종합체육관으로 이동해 화장실 좌변기 뚜껑을 닫고 그 위에 앉아 잠을 청했으나 역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주 교수는 “가출 청소년이 별다른 절차 없이 하룻밤 묵고 갈 수 있는 ‘드롭인(drop-in) 센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에는 가출 청소년들이 1개월가량 머물 수 있는 시립 단기 쉼터가 2곳, 심사를 거쳐 최대 2년까지도 지낼 수 있는 중장기 쉼터가 1곳 있다. 그리고 민간이 운영하는 쉼터가 3곳 있다. 단기 쉼터인 신림쉼터에만도 1년에 500명가량의 청소년들이 잠시 몸을 의지한다. 하지만 예산 부족 등으로 쉼터에서 지내기를 원하는 청소년들을 모두 감당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신림쉼터 관계자는 “최근에는 가출 시작 연령이 낮아져 이르면 10세에 가출을 시작한다”며 “막다른 상황에서 일부 비행을 저지르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의지할 곳이 절실한 청소년일 뿐”이라고 말했다. A 군은 “아직은 학교로 돌아가면 졸업할 수 있다”며 “중장기 쉼터로 옮겨 일단 학교를 졸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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