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노믹스’ 물경영 시대]<1>‘물관리’가 국가경쟁력- 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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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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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펀드… 美 가뭄지역 국가차원 지원, 물대계… 네덜란드 2200년까지 내다봐
물독립… 수입국 싱가포르 “80% 자급”

“흑선(黑船)이 돌아왔다.”

2006년 일본 상하수도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일본의 내로라하는 상하수도 기업들이 지바(千葉)와 사이타마(埼玉) 현, 히로시마(廣島) 시 등의 하수도 처리 사업권 입찰에서 세계 최대 물기업인 프랑스 베올리아에 줄줄이 패했기 때문이다. 1853년 폐쇄적인 일본을 압박해 개항을 유도한 미국의 증기선인 흑선처럼 외국 물기업의 공세에 자국 시장을 송두리째 내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일본은 물 산업 전열을 재정비했다. 2007년 정부, 학계, 재계가 똘똘 뭉쳐 ‘물 비즈니스 연구회’를 만들고 2009년 물 산업을 4대 신성장전략의 핵심 분야로 선정했다. 특히 ‘일본=소재강국’이라는 점을 활용해 필터 등 소재기술을 강화하는 동시에 신장 투석용 물과 같은 의료용 물 개발에까지 손을 뻗쳤다.

올해 8월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를 필두로 한 민주당 정치인들은 자국의 수자원 인프라 기술을 세계무대에 파는 ‘일본주식회사’ 판촉 활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후지스에 겐조(藤末健三) 일본 민주당 참의원은 “일본의 물 비즈니스는 동남아시아와 중국 등에 사회시스템 전체를 수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세계는 지금 물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이 한창이다. 기후변화와 인구증가, 도시화 등으로 물 부족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자 각국이 안정적인 물 확보와 물 산업의 성장동력화로 가기 위한 ‘워터노믹스(Waternomics·Water+Economics)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세계 물 산업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 영국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핀란드 이스라엘 호주 싱가포르 일본 등 10개국을 최근 현지 취재했다.

○ 물 선진국의 ‘물 패권’ 경쟁 가열

일본은 정부와 종합상사가 연합군을 이뤄 글로벌 물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일본 히타치(日立)상사는 몰디브에서 상하수도 사업을 펼쳤던 싱가포르의 아쿠아텍을 사들였다. 일본 정부는 히타치에 수출보험을 이례적으로 들어줘 지원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일본의 미쓰비시(三菱)상사는 호주의 물 서비스업체인 UUA를, 미쓰이(三井)물산은 멕시코 하수도 회사를 각각 인수했다.

세계 최고의 물 경쟁력을 보유한 미국은 물을 국가 안보와 직결시켰다. 미국안전보장국은 물 부족 등 자연자원의 부족이 무력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은 국토가 넓은 데다 건조한 캘리포니아 등 서부지역은 고질적인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음용수 펀드를 만들어 미국 전역의 물 관련 프로젝트에 지원하고 있다.

○ “물 관리는 백년대계”

육지의 4분의 1이 바다 아래에 있어 상시적으로 홍수 위협을 받는 네덜란드의 물 정책은 그야말로 ‘백년대계’다. 정부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2100년까지 네덜란드 주변의 해수면은 현재보다 0.65∼1.3m 올라가고, 2200년까지 2∼4m 상승한다. 이는 곧 육지가 잠겨 홍수 위험이 높아진다는 뜻. 네덜란드 정부는 2200년까지 물 관리 계획을 일찌감치 짜놓았다. 2050년까지 매년 12억∼16억 유로를, 2050∼2100년에는 매년 9000만∼1억5000만 유로를 각각 투입할 계획이다.

특히 올해 부처별로 나뉜 물 관리 프로그램을 조율하고 이행을 감시하는 ‘컨트롤 타워’ 격인 ‘델타커미셔너’를 임명했다. 빔 쿠이젠 델타커미셔너는 “내 임기는 7년으로 의회 임기(4년)보다 길다. 이는 정치권의 영향을 받지 않고 물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수자원은 풍부하지만 물 산업 육성에는 한발 뒤처졌던 일부 유럽 국가들도 물 산업 경쟁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수돗물을 생수처럼 마실 정도로 깨끗한 수질로 유명한 핀란드는 최근 민관을 묶어 핀란드의 수처리 기술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핀란드워터포럼’을 구성했다. 카트리 메토넨 핀란드워터포럼 제너럴디렉터는 “2015년까지 핀란드가 주요 물 수출국으로 발돋움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 ‘물 독립’과 ‘성장’ 동시에 달성

강우량은 많지만 빗물 모을 공간이 부족해 물 부족 국가로 꼽히는 싱가포르는 ‘물 독립’에 국가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부족한 물 수요량의 상당 부분을 인근 말레이시아에서 수입한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는 빗물을 모으는 저수지를 확대하는 한편 하수를 재사용하고 바닷물을 담수화하고 있다. 2010년 현재 하수를 정화한 물과 바닷물을 처리한 담수는 싱가포르 전체 하루 물 수요량의 40%나 충당한다. 2060년에는 이 비중을 80%까지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와 함께 싱가포르는 독일 지멘스 등 글로벌 물 기업을 유치해 ‘글로벌 하이드로허브’(세계 물 중심지)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국토의 3분의 2가 건조한 사막지역인 이스라엘은 해수담수화 설비를 확충해 2013년 바닷물을 이스라엘의 주요 수자원으로 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스라엘에는 해수담수화 설비가 29곳이나 된다. 또 17개에 이르는 부처와 물 관련 기관이 참여하는 물 관리 프로그램인 ‘뉴텍(NEWTech)’을 실행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물 산업 해외 수출액을 1조5000억 원(2008년)에서 2020년 20조 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세계 물 위원회 로이크 포숑 위원장 인터뷰 ▼
“물 스트레스 곧 일상화될 것… 국제 공조 정치적 타결 필요”


“물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10∼12년마다 세계 10억 명의 사람이 생활용수 부족을 겪을 수 있습니다.”

물과 관련한 각국 정부, 기업, 학계, 국제기구 전문가 모임인 ‘세계 물 위원회(World Water Council·WWC)’의 로이크 포숑 위원장(사진)은 지난달 말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 동아일보 특별취재팀과 가진 인터뷰에서 “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물 스트레스(hydro stress)’가 일상화되는 날이 곧 올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의 빠른 인구 증가, 대도시 인구 집중, 급격한 기후변화 등으로 물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포숑 위원장은 “물을 둘러싸고 전쟁 같은 극단적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국제 공조를 통해 상하수도 인프라를 개선하고 사하라 사막 이남 등 극심한 물 부족 지역에 대한 지원에 나서지 않는다면 인류 전체가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물 문제의 궁극적인 해법은 정치적 타결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물과 관련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2005년 (위원장) 취임 후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 각국 지도자를 여러 번 만났다”며 “세계 각국 지도자의 정책 결정의 최우선 순위에 물이 포함되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포숑 위원장은 물 문제와 에너지 문제를 연계하는 발상의 전환도 주문했다. 그는 “풍력발전처럼 물과 에너지 소모가 모두 적은 클린에너지 개발에 세계 각국이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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