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차령산맥을 따라서<20·끝>도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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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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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간척지 옆 철새낙원 간월호…탁 트인 시야에 속 시원!

차령의 막내인 도비산에서 바라본 간월호와 간척지. 멀리 보이는 갯벌에서는 굴과 새조개 대하 등 많은 먹을거리가 나오고 있다. 서산=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차령의 막내인 도비산에서 바라본 간월호와 간척지. 멀리 보이는 갯벌에서는 굴과 새조개 대하 등 많은 먹을거리가 나오고 있다. 서산=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오대산 두루봉에서 시작한 차령은 강원도를 지나 충청도로 달리다 서산과 태안에 이르러 백화산과 팔봉산으로 솟구친 뒤 서해로 종적을 감춘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 듯 서산시 부석면에서 온힘을 다해 다시 해발 352m의 도비산으로 솟아난다.

도비산 산행은 부석중학교 뒷길에서 시작해 중턱에서 부석사를 거친다. 이곳에서 가파른 능선을 따라 20분쯤 올라 정상에 도달하면 그 순간 사방이 확 트인다. 서쪽으로는 차령의 자락이 서해로 사라지는 모습이 확연하다. 동쪽으로는 철새의 낙원 간월호와 드넓은 간척농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조선 태조의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달을 보고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는 간월도와 간월암이 보인다. 주민들에 따르면 날이 맑은 날에는 중국 땅까지 보인다고 한다. 그만큼 서해안에선 높은 산이다.

도비산(島飛山)이라는 이름은 바다 가운데 ‘날아가는(飛) 섬(島)’ 같다 해서 붙여졌다는 말이 있다. 산 전체가 매년 봄이면 복숭아꽃이 만발해 복숭아 ‘도(桃)’, 살찔 ‘비(肥)’를 써서 ‘도비산(桃肥山)’이라고 한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산에 오르다 보면 복숭아나무보다는 도라지꽃이 무성하다.

산 중턱의 천년고찰 부석사에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당나라 처녀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 온다. 1400년 전, 신라 진평왕 9년에 의상대사는 원효대사와 함께 당나라에 유학을 간다. 의상대사는 공부에 얼마나 열심이었던지 명성이 당나라 안에 온통 퍼졌고 한 처녀의 흠모 대상이 된다. 이런 줄도 모르고 공부를 마친 대사가 귀국하려 하자 처녀가 따라나섰고 대사가 만류하자 바닷속으로 몸을 던져버리고 만다. 처녀는 용이 되어 대사의 귀국을 도왔다고 한다. 그 뒤 문무왕 16년, 대사가 왕의 명령으로 도비산 기슭에 절을 세우려 했을 때도 처녀는 큰 힘이 돼 준다. 마을 사람이 절 건축에 반대하자 큰 바위의 모습으로 마을에 떨어져 ‘항복’을 받아낸다. 이 바위는 바닷물이 들어와도 가라앉지 않아 절 이름을 뜰 ‘부(浮)’, 돌 ‘석(石)’을 써서 부석사(浮石寺)로 불렀다 한다. 이 지역 주민은 1982년 현대가 간척지를 조성할 때 산재가 잇따르자 바위를 폭파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믿으며 매년 바위에 처녀의 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도비산 남쪽에 위치한 간월도에는 무학대사가 창건한 간월암이 있다. 주변 해안은 ‘바다의 우유’라 불리는 굴이 풍부한데 이 또한 대사의 어머니와 관련이 있다 한다. 대사의 어머니가 간월도에서 나오는 생굴을 따 내다 팔며 살았다고.

이곳 갯벌 바위에서 자라는 굴은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7개월간 썰물 시간에 맞추어 딴다. 바닷물에 씻어 천일염에 담갔다가 곱게 빻은 고춧가루에 버무려 청수(하루 전에 끓인 물)로 국물을 만든 뒤 또 다시 3개월을 숙성시킨 게 바로 유명한 어리굴젓이다. 도비산을 중심으로 갯벌과 함께 살아온 주민들은 매년 간월도에서 굴부르기 축제를 연다.

도비산 주변 개발은 생태환경의 변화로 주민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많은 것을 주기도 했다. 서산AB지구 방조제 건립 후 이 일대에는 고급 패류인 새조개가 서식하며 어민들에게 효자가 되고 있다. 지금 제철을 맞은 대하도 마찬가지다. 간월호와 부남호는 국내 최대 철새도래지가 됐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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