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적응 역량을 키우자]<1>세계의 노력

동아일보 입력 2010-09-13 03:00수정 2010-09-13 03: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기후변화 대응 ‘맞춤형’으로… 英 “기상재해 피할수 없다면 적응” 법으로 실행 시스템 마련
세계 곳곳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이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유럽, 러시아, 일본 등지에서는 폭염으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파키스탄에서는 홍수로 15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국 간쑤(甘肅) 성에서 폭우로 1300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지만 중국 윈난(雲南) 성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올여름엔 폭염에 이어 태풍과 폭우로 인한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 주요 국가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에 심혈을 기울여 왔지만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 탓에 앞으로 상당기간 기후변화의 영향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영국 미국 호주 등 주요 국가들은 온실가스 감축과 함께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기 위해 ‘적응’ 노력이 한창이다.

○ 세계는 지금 ‘적응’ 중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적응의 중요성이 부각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영국 호주 미국 등 주로 선진국들이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중앙정부가 포괄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적응 대책을 실행하는 것은 주로 지방정부 몫이다.

주요기사
영국은 2008년 11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기후변화법을 제정했다. ‘완화’ 정책과 ‘적응’ 대책을 포괄해 기후변화와 관련된 정책을 좀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다. 이 법에 따라 영국 정부는 2012년까지 기후변화적응 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이다. 영국은 이미 1997년 기후변화 영향 평가와 적응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기후변화 영향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태스크포스 형태로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학계의 연구와 정책 결정자들 간의 가교 역할을 해 기후변화 관련 연구 결과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정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지역에 따라 극심한 가뭄과 물 부족, 산불 등에 시달리는 호주는 2006년 2월 의회의 요구로 기후변화에 대한 국가적응체계를 개발했다. 이듬해에 국가 기후변화적응 틀(프레임워크)을 공고했다. 이 틀은 기후변화 적응에 대한 이해도와 적응 능력을 높여 국가와 지역, 개인의 차원에서 적응해나갈 수 있도록 했다. 호주기후변화적응센터도 설립했다.

캐나다는 천연자원부 내의 ‘기후변화 영향 적응 부서’를 통해 ‘기후변화 영향 및 적응 프로그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아직 연방정부 차원에서 기후변화 적응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지만 2008년 현재 75개가 넘는 기후변화 적응 관련 법률안이 의회에 제출된 상황이다. 주 정부 차원에선 이미 적응 계획을 수립한 곳이 적지 않다. 일본,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은 이미 홍수나 해일 등에 적응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 실행에 옮기고 있다.

○ 한국은 어디까지 왔나

기후변화 적응 노력에서 한국은 주요 국가에 비해서 많이 뒤지지 않는다. 한국은 2008년 12월 환경부가 주관해 13개 부처가 합동으로 ‘국가기후변화적응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지난해 7월에는 기후변화 영향과 적응에 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를 설립했다. 지난해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가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5개년 계획’에서 제시한 정책방향 중에는 ‘기후변화 적응 역량 강화’가 포함돼 있다.

특히 한국은 지난해 4월 시행된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제48조에 따라 국가 차원의 범정부적인 기후변화 적응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올해 말까지는 중앙정부 차원의 세부 시행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또 16개 광역자치단체는 국가기후변화 적응대책을 토대로 지자체별로 세부시행계획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련해 시행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적응 대책의 주체가 돼야 하는 일선 지자체나 지역주민들 사이엔 ‘적응’에 대한 개념조차 낯선 실정이다. 이 때문에 지자체 조직 내부에서조차 기후변화 적응 대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부서 간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용하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장은 “기후변화 적응을 위해선 정부뿐 아니라 지자체와 국민, 산업계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며 “국가적 노력이 있어야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산업 기회를 선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한반도 기후변화 영향은 ▼
하루 80mm 이상 호우 늘고, 사라졌던 말라리아 급증


기후변화는 한국의 산림, 해양, 농업, 수자원, 보건, 거주시설 등 국민의 생활과 관련된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12∼2008년 서울, 인천, 대구 등 국내 6개 관측지점에서 평균기온이 섭씨 1.7도 상승했다. 이는 전 세계 평균기온 상승 정도(0.74도)보다 훨씬 높다. 같은 기간 강수량은 관측 지점인 강릉, 서울, 부산, 대구, 목포에서 모두 증가했다. 특히 1954∼2008년 14개 관측지점에서 관측한 결과 강수일은 점차 감소한 반면 하루 80mm 이상 호우 일수는 뚜렷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현상은 경제사회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과의 주산지가 경북에서 충북으로 북상했고, 제주 특산물이었던 한라봉은 전남 고흥, 경남 거제 등에서도 재배되고 있다. 해양생태계도 영향을 받고 있다. 해수온도 상승으로 한류성 어종 어획량이 점차 감소하고 그 자리를 난류성 어종이 대신하고 있다. 서해안에서는 제주도 등 남해안에서 주로 잡히던 난류성 어종인 멸치, 병어류, 고등어가 전체 어획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30년간 봄꽃 개화 시기는 6∼8일 앞당겨졌다. 최근 10년간 전국 109개 시군 40여만 명에게 가뭄 탓에 제한급수가 이뤄졌지만 지리산 등 일부 지역에서는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건강, 보건 측면에서도 많은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1994∼2005년 서울, 대구, 인천, 광주 등 국내에서 폭염과 관련해 사망한 사람이 2127명에 이른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국내에서 사라졌던 말라리아 발생이 2007년 이후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도 한 예로 꼽히고 있다.

▼ 이회성 IPCC(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 부의장 인터뷰
“기후변화 대응, 정부+지자체 협업이 필수”


“지역별 기후변화 영향에 관한 연구와 적응 노력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지역사회가 함께해야 합니다.”

이회성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 부의장(사진)은 12일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는 지역별로 상이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IPCC는 1988년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기후변화와 관련된 전 지구적인 환경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유엔총회 결의를 통해 설립된 정부 간 기후변화 협의체다. 각국의 기상학자, 해양학자 등 전문가 30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IPCC는 기후변화와 대응에 관한 인식을 높인 공로로 2007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부의장은 “그동안 배출된 온실가스는 앞으로 수십 년간 대기 속에 잔류하면서 지속적으로 온도 상승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완화’ 노력과 함께 이제는 적응 노력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자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기후변화에 관한 국가 간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적응’ 대책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대목이다.

이 부의장은 “아직 적응에 관한 각국의 노력은 대부분 걸음마 단계”라고 말했다. 특히 전 지구 차원의 기후변화 영향과 취약성에 관한 정보나 데이터는 있으나 개별 국가, 지역 차원에서는 아직 미비해 적응 대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개발도상국, 저개발국가 등에 대한 선진국의 지원 문제도 난제로 꼽았다.

이 부의장은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의 공동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주로 중앙정부가 주도하되, 적응 노력은 지역사회가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의장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정책 수단은 이산화탄소 배출 직접 규제나 화석에너지 가격 인상 등이어서 조세권을 가진 국가가 주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역별 기후변화 영향에 관한 정보 생산은 국가가 주도할 수밖에 없지만 적응 노력은 국가와 지자체,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의 피해가 지역별로 상이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고 그로 인한 피해 당사자는 지역 주민이기 때문이다.

<특별취재팀>

▽팀장 조용우 지역경쟁력센터장
▽미래전략연구소 김유영 박용 신수정 배극인 임규진 하정민 기자
▽환경정책평가연구원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 박용하 센터장, 이정호 연구위원, 김호석 강정은 부연구위원, 김은영 안재은 백경혜 연구원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