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공자 어깨 펴는 사회]<중>달라지는 보훈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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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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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로… 놀이하며 독립군 체험…
마음으로부터의 감사, 몸으로 배운다

《회사원 최의식 씨(48·서울 송파구 신천동)는 최근 휴일을 맞아 외식을 하다 대학교 1학년생인 아들 앞에서 낯을 붉혔다. 입대 계획을 묻는 질문에 아들이 ‘헛고생’ 운운하며 군대를 비하하는 말을 한 게 발단이었다. 최근 한 인터넷 수능 강사의 군 폄하 발언까지 생각나 울컥해진 최 씨는 6·25전쟁에서 부상한 부친을 거론하며 “할아버지도 헛고생한 거냐”고 꾸짖었다. 한참만에 아들은 “제 생각이 잘못됐다”고 사과했지만 ‘나라 지키는 일이 홀대를 받아서야…’라는 씁쓸한 생각은 줄곧 가시지 않았다.》

“한국에 태어나 사는 것이 자랑스럽다.”(78.8%) “우리나라는 살기 좋은 곳이다.”(75.7%)….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08 한국인의 의식 가치관 조사에서 나타난 수치다. 두 문항과 대조적으로 “국가를 위해서라면 내 이익을 희생할 수 있다”라는 항목에는 48.8%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있어도 국가를 위해 희생하려는 의식은 높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의식은 보훈 관련 활동에 대한 낮은 인식에서도 드러난다. 국가보훈처가 조사한 국민보훈의식지수에 따르면 보훈대상자나 보훈시설 방문, 자원봉사에 참여할 의향을 묻는 질문에 47.5%(2004년), 47.0%(2007년)만이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최광수 총신대 교수는 “나라가 경제적으로 부강해도 보훈의식이 미흡하면 누구도 나라와 공동체를 위해 나서지 않을 것이다. 이는 국가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국가보훈처와 보훈교육연구원은 보훈의식 고취 행사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올해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 추모행사와 청산리전투 90주년 등 기념행사와 홍보 활동을 펼쳤고 영화 ‘포화 속으로’와 드라마 ‘전우’ 제작을 지원하기도 했다. 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장은 “지금까지는 국가보훈이 물질적 보상에만 치중했지만 앞으로는 나라사랑 정신을 길러 정신적 국력을 키우는 보훈교육에 더욱 신경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6·25전쟁 참전 용사들이 학교로 찾아가 진행하는 특강이나 독립군 체험이 있다. 교사들이 직접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 각급 학교에 보내기도 한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독립군 체험 학교·캠프. 일제강점기 독립군 양성기관으로 중국에 세운 신흥무관학교를 본떠 만든 이 학교는 2008년 8월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문을 열었다. 학생들은 신흥무관학교의 의식주를 체험하고 나무 키트를 이용해 독립군 막사를 만들어볼 수 있다.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는 독립군 활동을 가정한 서바이벌게임을 할 수도 있다. 보훈처 남궁선 사무관은 “사람들이 다양한 행사와 교육, 대중매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역사의식을 갖도록 하면 보훈의식 제고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민족 통합을 위해서는 보훈교육의 범위를 해외까지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오일환 원장은 “정신적 국가만 망하지 않았다면 형식상의 국가는 망하였을지라도 그 나라는 망하지 않은 나라라는 백암 박은식 선생의 말처럼 해외 곳곳에 퍼진 재외동포들이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훈교육연구원은 내년부터 재외동포재단과 함께 재외동포들이 한국을 찾을 때 국가정체성을 되새기고 모국에 대한 흥미를 느낄 수 있게끔 전쟁 체험과 견학, 특강과 인터넷을 통한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

강석승 한국보훈학회 부회장은 “보훈 과목을 정규 교과과정에 넣는 것도 필요하지만 국가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와 그 가족에게 최고의 예우를 해 주는 것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교육은 없다”며 “전쟁 영웅이 학교와 기념관 등에서 자연스럽게 어린이들과 접촉하며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미국과 캐나다 등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 사선 넘어온 탈북 국군포로 고국선 ‘고난의 포로’가 되다 ▼
브로커 협박 시달리고… 정착지원금 놓고 가족과 불화…
정부, 연금 전환 등 대책 검토

서바이벌게임으로 배우는 청산리전투 충남 천안시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 청소년들이 청산리전투를 재현한 서바이벌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보훈교육연구원
서바이벌게임으로 배우는 청산리전투 충남 천안시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 청소년들이 청산리전투를 재현한 서바이벌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보훈교육연구원
국군포로 출신 탈북자인 최병선 씨(76·인천 연수구)는 1950년 11월 국군에 징집됐다. 배치된 곳은 북한군과 치열한 교전이 펼쳐지던 강원도 인제.

1951년 1월 북한군에게 잡혀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 풀려난 뒤 결혼을 해 자식 5명을 낳았지만 아버지의 출신성분은 자식들의 진로에 장애물이었다. 부인이 1997년 사망하자 그는 아들 손자와 함께 2002년 12월 25일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넘어갔고 2003년 6월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 암흑 세상에 갇혔던 국군포로들에 대한 세상의 관심과 지원이 아쉽다”고 말했다.

현재 최 씨 같은 국군포로가 북한을 빠져나오기 위해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도움은 사실상 없다. 정부는 남북회담 등을 통해 몇 차례 국군포로 문제를 제기했으나 그때마다 북한 측은 “국군포로가 없다”고 답해 공식적으로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국군포로들은 스스로 탈북하거나 탈북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곤 한다. 그러나 수십 m 간격으로 촘촘하게 초소를 세워둔 북한군의 감시를 피해야 한다. 발견 즉시 사살하는 경우도 있고 생포될 경우 죽을 때까지 노동수용소에 갇히게 되므로 말 그대로 ‘사선’을 넘는 일이다. 간혹 뒷돈을 챙긴 북한군의 외면으로 도강에 성공하지만 국군포로 대부분은 80대 이상의 고령으로 몸을 가누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단 강을 건너도 대한민국으로 돌아오기까지 넘어야 할 고개는 여전히 높다. 탈북까지 ‘도우미’ 역할을 했던 브로커는 중국으로 들어선 순간 ‘악당’으로 변하기 일쑤다. 상당수의 탈북자가 돈을 노린 중국 내 브로커에게 ‘각서’를 강요받고 탈북하는 경우가 많다. 남한 내 가족을 잠깐 만나고 가라는 제안에 국경 지역에 갔다가 갑자기 강요된 탈북에 말려드는 ‘사기’도 횡행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북한으로 넘기겠다는 협박에 중국에서 무조건 수천만 원을 지불하겠다는 각서를 쓴 국군포로들이 한국에 와서까지 돈을 강요받기도 한다.

꿈에 그리던 대한민국의 땅을 밟고 나서도 이들의 고난은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착지원금’을 놓고 혈육과 갈등을 겪기도 한다. 정부는 귀환 국군포로에게 북한에 억류된 기간을 복무연한으로 계산해 정착지원금을 지급하는데 금액은 6억∼8억 원에 이른다. 최근 한 시민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귀환 국군포로 10명 중 7명은 정착금 문제 때문에 한국의 형제나 친척과 사이가 멀어진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정착금을 연금 형태로 매달 나눠 지급하거나 주거지원금 대신 임대주택을 마련해 주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 공무원이 등산하다 다쳐도 유공자? ▼
범위 모호… 존경아닌 특혜대상자 인식
“선진국처럼 적용 엄격하게 해야” 지적


67점(2005년), 65점(2006년), 63점(2007년), 61점(2008년)….

보훈교육연구원에서 2009년 12월 펴낸 국가보훈 미래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보훈의식지수는 해마다 뚜렷이 낮아지고 있다. 이 보고서는 “공헌성이 뚜렷한 독립유공자, 6·25 사상자 등은 감소하는 데 비해 일반 복무 중 경상을 입은 국가유공자가 증가하면서 사람들이 국가유공자를 존경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특혜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분석했다. 보고서에서 지난 3년간 보훈대상으로 신규 등록한 이들 중 상이등급 6급 이하 경상자는 92%에 달했다.

한국법제연구원은 지난해 3월 펴낸 보고서에서 ‘한국의 보훈대상 범위가 확대되면서 사회보장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보훈 개념으로 흡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제대군인부’가 있어 보훈 대상을 군인으로 한정했다. 영국은 사회보장급여청에서 전쟁연금 업무를 국방부로 이관해 제대군인청으로 별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나라에서 보훈대상을 군인으로 한정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민주화와 공무수행 영역 등 다양한 영역으로 보훈대상을 확대해 특수성과 상징성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보훈대상 범위는 2009년 기준으로 7개 법률에 29개 유형에 이른다. 독립유공자와 6·25참전유공자, 전몰·상 군경과 순직·공상 군경,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고엽제후유증 환자, 장기복무제대군인 등이다.

이 때문에 법제연구원은 보훈대상을 국가유공자와 제대군인, 지원대상으로 재분류해 개편할 것을 제안했다. 국가수호와 직접적 관련성이 적은 사망·부상 군인과 순직·공상 공무원은 지원대상자로, 중장기복무 군인과 보국수훈자는 제대군인 영역으로 분류하고 보상 내용을 차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훈처는 보훈대상을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지원대상)로 분류하는 내용의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안’을 지난해 12월 제출했고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경기대 유영옥 교수(국가보훈학)는 “국가를 위한 전투나 훈련 과정에서 손실을 입으면 국가가 마땅히 보답해야 하지만 군인이 전역 축하 구타로 다치거나 공무원이 등산하다 허리를 다쳐도 국가유공자로 등록된다면 국민의 보훈인식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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