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희망근로, 네 덕에 살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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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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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희망 낳는다
‘희망근로사업’ 이달말 종료

■ 다문화가정 엘시소 씨
영어 가르치며 월 83만원 “적은 돈이지만 큰 보람”

■ 환갑 넘긴 남정자 씨
취약계층 도배작업 참여 “어려운 이웃 돕기 내겐 힘”

■ 행정안전부
“실업률 줄고 자긍심 싹터” 하반기 후속 희망근로 추진

《경제가 풀리고 있다는 정부 발표에도 서민들은 더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나라 살림이 어려울수록 저소득층의 하루하루가 더 빠듯하기 마련이다. 정부는 어려운 서민들을 위해 지난해부터 한시적이나마 일자리를 제공하는 ‘희망근로사업’이 저소득층의 사회안전망 역할을 함으로써 실업률을 낮추고 주민의 소득 창출과 사회공헌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이 지난해보다 대폭 축소되고 내년에도 이어질지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일각에서는 공공 일자리 창출과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는 역할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13일 경기 파주시 금촌동 중앙도서관에서 레지 엘시소 씨(오른쪽)가 한 어린이에게 교재를 보여주며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엘시소씨가 영어 수업을 하게 된 것은 지역 실정에 맞는 다양한 희망근로사업이 마련된 덕분이다. 파주=박영대 기자
13일 경기 파주시 금촌동 중앙도서관에서 레지 엘시소 씨(오른쪽)가 한 어린이에게 교재를 보여주며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엘시소씨가 영어 수업을 하게 된 것은 지역 실정에 맞는 다양한 희망근로사업이 마련된 덕분이다. 파주=박영대 기자
6년 전 필리핀에서 결혼 이민을 온 경기 파주시 광탄면 레지 엘시소 씨(33·여)는 요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결혼 후 세 아이를 뒀지만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쉽지 않아 가계를 꾸리기 어려웠는데 지난해 10월부터 희망근로를 통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가 참여한 희망근로사업은 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 필리핀 대학에서 영어와 수학을 전공하고, 4년여 동안 학생을 가르친 경험이 있었지만 한국에서 낯선 피부색의 그에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엘시소 씨는 “2004년 한국으로 시집왔을 때는 농사일 외에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며 “하지만 희망근로를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겨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지역 내 결혼이민자들을 위한 희망근로사업 분야를 연구한 경기도와 파주시가 마련한 저소득층 자녀 영어교실 강사로 채용돼 매일 파주시 중앙도서관에서 50여 명의 초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해서 그가 버는 돈은 월 83만여 원이다. 어찌 보면 적은 돈이지만 한국 사회에 기여한다는 생각에 보람이 크다.

희망근로는 다문화가정 구성원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희망근로에 참여한 남정자 씨(64·경남 고성군 개천면)는 또 다른 희망을 만들고 있다. 남 씨는 남편과 캄보디아 출신 며느리, 손자와 함께 산다. 아들은 지난해 1월 갓난아기를 남겨두고 돈을 벌려고 집을 떠났다. 칠순의 남편은 몸이 좋지 않아 일을 할 수 없다. 며느리는 아기를 돌봐야 했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에 환갑을 넘긴 남 씨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다행히 2008년 겨울부터 경남 통영시의 굴 가공공장에 취직해 수출용 굴 선별 작업을 했지만 지난해 5월이 되자 공장이 가동을 중단했다. 막막한 남 씨에게 그해 6월 면사무소를 통해 희망근로에 참가하라는 권유가 들어왔다. 말 그대로 희망이었다. 남 씨는 희망근로 급여로 손자의 분유와 기저귀, 생활필수품을 샀다.

올해 3월부터는 ‘취약계층 도배장판 교체사업’에 참여했다. 개천면의 16개 마을을 돌며 홀몸노인, 장애인 등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방문해 낡은 벽지와 장판을 새것으로 바꿔주는 일이다. 남 씨는 자신보다 더 어렵게 사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이웃의 어려움을 모르고 살았다는 자책감이 들었다고 한다. 남 씨는 면사무소에 사정을 얘기해 한 할머니의 방에 전기콘센트를 설치해 줬다. 할머니는 고맙다며 남 씨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남 씨는 “도배하고 장판을 갈기 위해 살림살이를 들어내 하나하나 청소하고 장롱 위까지 깨끗하게 닦다 보면 보람이 생긴다”며 “희망근로자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이웃들의 모습에 힘든 것도 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정부가 마련한 희망근로사업은 이달 말로 끝날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25만여 명이 참여했지만 올해는 예산이 부족해 10만 명이 참여하는 수준으로 축소됐다. 예산도 지난해 1조7070억 원에서 올해는 5727억 원으로 대폭 줄었다. 올해 희망근로사업이 시작되기 전인 1월 실업률이 5.0%였지만 희망근로사업 시작 이후 계속 줄어들어 5월에는 3.2%를 나타내 희망근로가 사회안전망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사업을 주관해 온 행정안전부는 단순한 저소득층 지원뿐 아니라 실업률 하락, 사회 구성원의 자긍심 고취 등의 효과가 있다고 보고 하반기(7∼12월)부터는 ‘후속 희망근로사업’으로 이 사업을 이어갈 방침이다. 박태식 전북대 교수(한국지역경제학회장)는 “희망근로가 일시적인 저소득층 지원이 아니라 자립 의지까지 만들어준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지속성을 두지 못하면 결과적으로는 일시적인 지원과 다를 바 없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주=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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