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 우리학교 공부스타/서울 정원여중 3학년 김수현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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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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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들켜 옮겨앉은 ‘벌석’이 ‘성적 껑충 특별석’ 되었어요”

《앞머리에 ‘똑딱 핀’을 찔러 넣은 김수현 양(15·서울 정원여중 3)은 아주 평범한 여중생이다.
수업시간에 몰래 친구와 수다 떨기를 좋아하고 TV예능프로그램 ‘우결(우리 결혼했어요)’과 ‘무한도전’을 즐겨 본다.
달콤한 케이크를 한입 물 때 행복하고, 인기그룹 ‘비스트’ 오빠들을 보면 흐뭇하다.
하지만 김 양이 비범한 것이 한 가지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긍정적 성격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학기 초에 이번 학기 화장실 청소를 담당할 청소 당번을 뽑는 시간, 담임선생님이 무작위로 부른 학급번호는 공교롭게도 김 양의 번호였다.
김 양은 싫은 기색 하나 없이 화장실 청소를 맡았다. ‘화장실 청소’ 하면 왠지 ‘벌 청소’가 떠오르는데 괜찮겠느냐는 엄마에게 김 양은 말했다. “괜찮아, 엄마. 우리 학교 화장실 깨끗해서 안 힘들어! 봉사시간도 인정해준대!”》
호텔 제빵사가 꿈인 서울 정원여중 3학년 김수현 양.
호텔 제빵사가 꿈인 서울 정원여중 3학년 김수현 양.
김 양의 이런 낙천적인 성격은 친구들의 인기를 끌어 모았지만 그의 성적은 끌어 올리지 못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중1 때 첫 시험 성적은 평균 73점, 등수는 전교생 약 300명 중 120∼130등을 오갔다. 그는 생각했다. ‘중간 정도는 되네. 못하는 건 아닌가 보다.’

성적이나 공부에 대한 위기감이 없다 보니 수업시간에 제대로 수업을 듣지 않았다. 하루 여섯 과목 중 네 과목은 엎드려 잤다. 잠이 안 와도 그냥 누워 있거나 친구들과 속닥거리며 놀았다. 딱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대비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시험 하루 전날이 돼서야 다음 날 시험 보는 세 과목의 교과서를 폈다.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했던 내용을 한 번 읽고 문제집을 푸는 게 다였다. 문제집도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대강 답지만 보고 넘어갔다. 중학교 첫 학년을 그렇게 보내고 2학년이 되어 처음 본 중간고사 성적은 전교 282명 중 191등. 하위권으로 성적이 떨어지니 공부는 더 하기 싫어졌다. 반면 같은 학교에 다니는 김 양의 이란성 쌍둥이 동생은 중학교 입학고사 때 수석을 차지한 뒤 현재 반에서 3등 안에 드는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동생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없었을까?

“동생 성적표를 보고 깜짝 놀라긴 했어요. 그렇게 잘하는 줄 몰랐거든요. 별 생각은 없었어요. 따라잡을 수도 없을 것 같고. 선생님들이 혹시 속으로 ‘쌍둥인데 왜 이렇게 다르냐’고 생각하실까봐 약간 신경 쓰이는 정도….”

그러던 김 양의 성적은 3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106등으로 1년 만에 약 90등이 훌쩍 오른다. 비결이 뭘까? 김 양은 한마디로 답했다. “수업시간에 안 잤어요.”

3학년 1학기 초 김 양은 조회시간에 친구와 떠들다가 담임선생님의 지적을 받았다. 그는 떠든 데 대한 벌로 교탁 바로 앞 책상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짝도 없이 동떨어져 있는, 분단과 분단 사이에 덩그러니 홀로 놓인 ‘섬’ 같은 자리였다.

처음엔 투덜댔다. 마음 편한 뒷자리에 있다가 코앞에서 선생님들을 마주하기가 부담스러웠다. 막상 그 자리에 앉으니 수업시간에 차마 엎어져 잘 수가 없었다. 선생님과 눈이 계속 마주쳤다. 신기했다. 귀 기울여 듣다보니 과목마다 흐름이 파악됐다. 친구들과 간간이 말장난을 치다가도 선생님이 칠판에 필기하면 곧바로 받아 적었다. 처음으로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수업을 들었다. 자신의 자리가 ‘벌석’이 아니라 ‘특별석’임을 깨달은 김 양은 이후 자리를 바꾸는 시간이 돌아와도 자청해서 그 자리를 고수했다. 결국 한 학기 내내 그 자리는 김 양의 고정석이 됐다.

“선생님들이 많이 칭찬해 주셨어요. 옛날엔 진짜 까불더니 3학년 되니까 수업태도가 많이 좋아졌다고요. 기분도 좋고 뿌듯했어요. 가끔 어떤 선생님은 머리에 비 오듯이 침이 튀어서 곤란할 때도 있지만요(웃음).”

담임교사와의 상담도 김 양에게 큰 힘이 됐다. 김 양은 상담 시간에 조리과학고에 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김 양 자신이 생크림 케이크의 ‘광팬’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일주일에 한 번 간식으로 사오는 케이크를 먹다 보니 절로 좋아졌다.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혼자 한 판을 다 먹는다. 가끔 생크림만 따로 사 와서 숟가락으로 퍼 먹기도 한다. 선생님은 그에게 “지금 성적으로는 힘들지만 3학년 때 열심히 하면 네가 원하는 조리과학고에 갈 수 있다”고 했다.

김 양은 “선생님이 ‘너도 열심히만 하면 동생만큼, 아니 동생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해 주셨다”면서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서 더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고 했다.

학교생활이 조금씩 달라졌다. 수업태도를 바르게 한 것밖에는 한 일이 없는데 성적이 오르니 신이 났다. 이번 기말고사 때는 시험 3주 전부터 주말에 독서실에 갔다. 2학년 때까지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던 예체능 과목도 매일 10분 틈틈이 교과서를 읽었다. 한자는 하루에 세 개씩 외웠다. 영어는 단원당 200여 개 문제를 풀다 보니 점점 문제유형이 보였다.

시험 전날에는 생전 처음 밤을 새웠다. 잠을 깨려고 커피를 세 잔 마셨더니 밤새 잠이 안 왔다. 귀신 이야기를 무서워하는 김 양은 거실과 부엌 불까지 켜고 공부를 했다. 모두 잠든 조용한 새벽에 집중이 잘됐지만, 너무 무서울 땐 엄마 방에 살짝 들어갔다 나오기도 했다.

김 양은 앞으로 호텔 제빵사가 되고 싶다. 한 달에 한두 번씩 학교 특별활동으로 케이크 데커레이션을 하며 이 꿈을 키웠다. 얼마 전엔 호랑이 얼굴 무늬 케이크를 만들었다. 강사가 나눠 준 사진을 보면서 스펀지케이크 위에 흰 생크림을 바르고 ‘짤주머니’에 넣은 초콜릿 크림으로 눈, 코, 이마 줄무늬를 그렸다.

“제가 데커레이션한 케이크를 집에 가져갔는데 엄마 아빠 동생 모두 너무 예쁘고 맛있다고 했어요. 나중에도 다른 사람들이 제가 만든 빵을 먹고 맛있어 하면 행복할 것 같아요. 그렇게 되려면 우선 지금처럼 열심히 수업을 들어야겠죠?”

장재원 기자 jjw@donga.com
※‘우리학교 공부스타’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중하위권에 머물다가 자신만의 학습 노하우를 통해 상위권으로 도약한 학생들을 추천해 주십시오. 연락처 동아일보 교육법인 ㈜동아이지에듀 02-362-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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