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단협 이면합의 속출… ‘타임오프’ 유명무실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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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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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자 임금지급 조항 악용… 적발돼도 ‘편법유지’ 요구
금속노조, 기아차-협력사 연계 내달부터 연대투쟁 계획

《다음 달 1일 노동조합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금지와 유급 근로시간면제 제도(타임오프) 시행을 앞두고 노조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기존 전임자 제도를 유지하는 내용을 담은 이면합의를 체결하는 사업장이 속출하고 있다. 타임오프 도입 반대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전국금속노조는 이 여세를 몰아 7월 이후엔 기아자동차지부와 부품 협력사를 연계한 연대투쟁을 벌이는 등 공세 수위를 한층 높이는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 예외 인정 요구 많아

27일 노동부와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A사의 경우 전임자 외에 사무여직원 1명을 별도로 인정하고, 노조에 자동판매기 운영권을 넘긴다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최근 체결했다. B사는 노사가 합의하면 타임오프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노조활동도 인정하고, 상급단체 파견자 임금도 예전처럼 지급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총은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노조의 위법 편법적 단체협상 요구로 ‘법으로 정한 근로시간 면제대상 이외 업무를 유급으로 인정해 달라’는 내용(51.4%)과 ‘노조 간부 활동을 근로시간 면제 범위에서 제외해 별도로 유급을 인정해 달라’는 내용(45.7%)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노동부의 부당노동행위 단속을 피해 교묘하게 단협을 체결하는 사업장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C사의 경우 최근 휴직자에게 최장 1년까지, 평상시 임금의 50∼70%를 지급할 수 있게 하는 단협을 체결했다. 경영계에선 이 조항이 노조 전임자를 위해 편법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금속노조 산하 E사 노조는 전임자 수를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임오프 위반이 적발돼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로 처벌을 받더라도 단협을 유지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 단속 실효성에 의문

정부는 이를 모두 부당노동행위로 보고 단속 및 처벌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개별 사업장에서 이뤄지는 단협을 정부가 모두 점검하고 단속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익을 보는 노조와 부당노동행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사용자 모두 이면합의 내용을 외부에 공개할 리가 없기 때문에 노동부가 적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경총은 이런 사례를 적발하려 단체교섭 상황점검반을 꾸리고 신고센터(02-3270-7470)를 운영하고 있지만 신고전화는 아직 뜸한 상황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모든 사업장을 확인하고 단속할 수는 없지만 노조원 5000명 이상 기업을 타깃으로 삼아 집중 점검을 벌여 예외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7월 이후에도 지뢰밭

그러나 7월 이후에도 노사관계가 혼란을 이어갈 지뢰밭이 곳곳에 남아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금속노조는 타임오프가 시행되기 전 단협을 개정해 전임자 규모를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7월 1일 이후에도 지부별 단협 개정 투쟁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금속노조 내부에서는 “7월 이후에 단협을 타결하더라도 타결 시점을 올해 1월 1일 이전으로 정할 경우 부당노동행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단협에 노동법 강행규정을 위반한 내용이 들어가도 그 조항이 당연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며, 민사소송을 통해 급여를 받아낼 수 있다”는 등의 편법적인 타결 전략이 확산되고 있다. 아울러 시효가 끝난 단협을 개정하지 않고 7월 이후로 넘기는 사업장에서도 급여지급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등 다양한 투쟁 수단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 금속노조, 연대투쟁 전환 모색

금속노조는 기아차지부와 자동차 핵심 부품사 노조와의 연대투쟁을 모색하기 위해 최근 현대·기아차 계열사 및 협력업체 노조 모임을 수차례 연 것으로 확인됐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최근까지 85개 사업장에서 전임자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하는 단협을 얻어냈지만 현대·기아차 등 재벌 계열사 노조의 성과가 부족했다”며 “29일 금속노조 쟁의대책위에서 재벌 계열사에 대한 연대투쟁의 범위와 전략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금속노조가 지금까지 지부별로 단협을 개정하는 ‘각개 전투’를 벌여 온 데 이어 대기업과 협력업체를 함께 공격하는 연대 투쟁으로 전략을 수정하는 것이다. 이 계획에 참여하는 노조는 주요 부품업체를 포함해 10여 개사로, 이들이 연대 파업을 벌일 경우 자동차 생산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동계 안팎에선 타임오프 개정을 목적으로 한 연대 파업이 불법이라는 점, 일반 노조원의 지지가 높지 않다는 점 때문에 이들이 실제 파업에 들어가기에는 부담이 클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기아車 노조 앞세워 세몰이
노동계 동조효과 확산 기대


■ 파업결의 파장

GM대우도 찬반투표 앞둬
기업들은 ‘눈치보기’ 급급
타임오프제 연착륙 변수로


전국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기아차 노조)가 25일 찬반투표를 통해 파업을 결의함에 따라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되는 유급 근로시간면제 제도(타임오프)의 향방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금속노조는 타임오프의 찬반투표 성격을 띤 이번 투표에서 투표율 91.3%, 재적인원 대비 찬성률 65.7%의 높은 지지를 얻어냄에 따라 노조 전임자 수를 현행대로 유지하기 위한 사업장별 단체협상 타결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타임오프제 무산 노리는 노동계

금속노조는 기아차 등 핵심 사업장을 앞세운 ‘세몰이’로 사실상 타임오프제를 무산시키려 하고 있다. 주요 사업장에서 전임자 제도를 유지하면 나머지 사업장도 대세를 따라 타임오프제에서 이탈하는 ‘밴드왜건 효과(동조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160여 곳의 단체협약 체결 대상 가운데 전임자 유지를 약속 받은 사업장을 현재 85곳에서 이달 말까지 100곳 이상으로 늘릴 것으로 보고 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전임자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는데 우리는 왜 안 되느냐’는 논리가 현장에서 먹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계에서는 28, 29일 파업 찬반투표를 앞둔 GM대우자동차에서도 높은 찬성률을 얻을 것으로 보고 있다. GM대우차의 경우 타임오프제 외에도 “더 이상 임금을 동결할 수 없다”는 심리가 많아 임·단협이 난항을 겪을 경우 강한 파업을 벌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타임오프제가 노조 집행부에만 해당되는 ‘그들만의 이슈’이기 때문에 노조원의 참여를 이끄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자동차 업계는 기아차 투표 결과에 대해서도 “기아차 노조원들로서는 차량 판매가 잘돼 각종 수당을 탈 수 있는 상황에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정치 파업을 벌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 법 지키면 손해?…사용자 분열이 변수

노동계의 강한 요구에 밀린 일부 기업이 전임자 제도를 유지하는 이면합의를 체결해주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타임오프제가 연착륙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5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개최한 간담회에 참석한 20여 개 주요기업 노무 담당 임원들은 “금속노조에 맞서 한 곳이라도 타임오프제 이면합의를 하는 선례를 남기지 않겠다”고 결의했다. 그러나 이날 일부 기업 관계자들은 “몇몇 기업이 ‘나만 피해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면합의를 하는 바람에 법을 지키려는 쪽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총은 금속노조의 주장과 달리 대부분의 사업장에선 아직 타임오프제 관련 교섭이 타결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총에 따르면 최근 금속, 보건, 금융 등 업종별 주요 기업 35곳을 대상으로 임·단협 교섭 상황을 조사한 결과 세부적인 내용을 정해 타결에 이른 곳은 5.7%에 불과했다. 교섭을 진행 중(54.2%)이거나 타임오프제 관련 교섭을 미룬(17.0%) 경우가 많았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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