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오프 대리전’ 기아차 파업 戰雲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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勞 “전임자수 늘려달라”… 24, 25일 쟁의 찬반 투표
使 “노조 요구는 법 무력화 의도… 못들어 줘” 초강수

다음 달 1일 개정 노동법 시행을 앞두고 재계와 노동계가 남아공 월드컵만큼이나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업장이 있다. 개정 노동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타임오프제(유급근로시간 면제제도)를 둘러싸고 노사 간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는 기아자동차가 그 현장이다.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고 노조 활동을 할 수 있는 ‘타임오프 대상자’와 관련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법에서 정한 인원 외에 더 둘 수 없다는 견해인 반면 노동계는 노사가 합의하면 법정 인원보다 더 둘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기아차는 타임오프제의 성패를 미리 엿볼 수 있는 사업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조합원이 2만8000여 명에 이르는 기아차 노조는 14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쟁의 발생을 만장일치로 결의한 데 이어 24, 25일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노조가 파업을 해서 생산 차질이 있더라도 개정 노동법을 무력화하려는 노조의 요구 사항은 실정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들어줄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7월부터 법이 시행되면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도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노사 양측이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 파업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면 기아차는 20년 연속 파업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타임오프를 둘러싼 양측의 힘겨루기가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는 것은 예고된 수순이라는 지적이 많다. 타임오프제가 시행되면 유급 노조 전임자 수가 181명에서 18명으로 크게 줄어드는 기아차 노조는 올해 임금·단체협상 요구안에 전임자 수를 오히려 늘려달라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노조는 이를 관철하기 위해 예년보다 일찍 임·단협을 시작하자며 회사 측을 압박했다.

회사 측은 지난달 노사 업무를 총괄하는 경영지원본부장을 전격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현대·기아차 안팎에서는 노조의 요구에 밀려서는 안 된다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의중이 실린 인사로 해석했다. 기아차 관계자는 “노조 파업으로 인한 손실은 감수할 수 있지만 노조의 요구는 절대 들어줄 수 없다는 게 회사 방침”이라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회사 측은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면 현대차 등 다른 계열사 노조가 같은 요구를 했을 때 거부할 명분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노조 때문에 발목을 잡혀 온 후진적 노사관계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현행 단협 종료 직후인 내년 4월 타임오프제가 적용되면 노조 전임자가 217명에서 24명으로 줄어든다.

대결 국면으로 접어드는 또 다른 이유는 양측 모두가 상대편이 물러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K5, 스포티지R 등 최근 나온 신차가 인기 몰이를 하는 상황에서 생산 차질이 계속되면 회사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회사 측은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이 중단되면 노조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노조가 전임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합비로 임금을 줘야 한다. 지난해 기아차 직원의 평균 연봉이 6993만 원인 점을 감안하면 임금을 못 받게 되는 전임자 162명의 임금이 월 10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회사 측은 추산하고 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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