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서울에 향교-서원 한 곳씩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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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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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향교, 1981년 복원… 13일 사업단 출정식
도봉서원, 조광조 자주 찾던 곳… 1972년 재건

서울 강서구 가양동 양천향교(왼쪽)와 조광조가 자주 찾았다고 전해지는 서울 도봉구 도봉동 도봉서원. 향교와 서원은 조선시대 지방 인재를 길러내던 교육기관이다. 사진 제공 서울시
서울 강서구 가양동 양천향교(왼쪽)와 조광조가 자주 찾았다고 전해지는 서울 도봉구 도봉동 도봉서원. 향교와 서원은 조선시대 지방 인재를 길러내던 교육기관이다. 사진 제공 서울시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은 조선시대 지역 인재를 교육하고 학덕 높은 유학자 위패를 모시던 기관이다. 도읍 서울에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이 있었다면 지방 곳곳에선 향교와 서원이 이 기능을 했다. 10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 가양동 234와 도봉구 도봉동 도봉산 계곡에도 향교와 서원이 한 곳씩 남아 있다. ‘양천향교’와 ‘도봉서원’이다. 1963년 당시 소재지였던 경기 김포군 일부와 양주군이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서울의 마지막 향교와 서원으로 보존돼 오고 있다.

양천향교는 조선 태종 11년(1411년)에 지어져 선비들을 길러내다 1909년 보통학교령 반포에 따라 교육기능을 잃었다. 1981년 복원 당시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과 교육 장소로 쓰였던 명륜당 등의 규모를 키워 새로 세웠다. 시는 1990년 양천향교를 시 기념물 제8호로 지정해 보존 중이다. 내년 창건 600년을 앞두고 13일엔 ‘양천향교 창건 600주년 기념사업단 출정식’을 연다. 도봉서원은 조선 전기 대표적 성리학자인 조광조가 자주 찾던 곳으로 전해진다. 조광조는 조정 공무를 마친 뒤 수레를 몰아 도봉서원으로 와 경치를 구경했다고 한다. 조선 선조 6년(1573년)에 조광조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원래 있던 절터에 서원을 세웠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과 6·25전쟁으로 두 차례 훼손됐던 서원은 1972년 도봉서원재건위원회 구성으로 복원됐다. 도봉서원 주변에는 송시열이 ‘도봉동문(道峯洞門·도봉계곡)’이라고 글씨를 새긴 바위를 비롯해 당대 명필들이 글씨와 시문을 새긴 바위 11개가 흩어져 있다. 시는 도봉서원과 주변 유적을 시 기념물 제28호로 지정해 보존 중이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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