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꽃 키우며 몸과 마음도 치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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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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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지적장애인 재활농장 ‘해피투게더’ 르포

6600㎡ 비닐하우스서 팬지 등 꽃재배 판매
장애인 14명 자립돕고 자연치료 일석이조 효과

《“안녕하세요!” “와, 사진 찍어주세요.” 23일 낮 경기 화성시 송산면 용포리의 한 비닐하우스. 카메라를 든 기자가 안으로 들어가자 굵고 우렁찬 인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노란색 메리골드 화분을 손에 든 남자들이 나란히 서서 웃고 있었다. 티셔츠에 운동화, 천진난만한 미소가 영락없는 10대 청소년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나이는 20대 초중반이다. 모두 경기도직업개발연구센터의 ‘해피투게더 농장’에서 일하는 지적장애인이다. 임유신 센터 사무국장(41)은 “나이에 걸맞은 생각과 행동을 못할 뿐이지 겉모습은 일반인들과 같다”며 “이렇게 늘 자연 속에서 일하다 보니 성격들이 밝다”고 말했다.

○ 장애인 재활의 ‘블루오션’

연구센터는 2004년 경기도가 장애인 직업재활을 목적으로 설립해 현재 사단법인 ‘행복한 동행’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1차 산업 분야에서 장애인 재활을 추진하고 연구까지 하는 곳으론 국내 최초다.

설립 초기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선뜻 땅을 빌려줄 것 같았던 토지주들은 “장애인들이 농사지을 땅”이라고 말하면 손사래를 치며 계약서를 찢어 버렸다. 여러 곳을 전전한 끝에 어렵사리 지금의 땅을 빌려 ‘해피투게더 농장’을 세웠다. 하지만 농사는 땅만 갖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장애인들이 재배할 수 있는 복잡하지 않고 안전한 작물을 찾는 게 가장 중요했다. 게다가 안정적인 수익도 얻을 수 있어야 했다. 3년 가까이 실패를 거듭한 끝에 팬지와 비올라, 피튜니아, 메리골드 등의 꽃이 장애인 농업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6600m²(약 20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에는 철마다 빨간색, 노란색 등 각양각색의 꽃들이 재배되기 시작했다. 꽃 재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7년 1000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듬해 1500만 원, 2009년 3700만 원의 수익을 거뒀다. 화성시 등 가까운 지방자치단체들이 도로나 공공기관 화단 조성에 필요한 꽃을 주로 이곳에서 구입해 줬다. 꽃 1송이의 공급가격은 일반 도매가격보다 50∼60원 싸다.

무엇보다 장애인이 재배한 농작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좋아 앞으로 시장 전망은 더욱 밝다. 임 사무국장은 “소비자 중 상당수가 ‘장애인들은 장난치지 않고 정직하게 농산물이나 꽃을 생산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친환경 농산물을 직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지자체 등 안정적인 판로만 확보되면 장애인 직업재활에 매우 적합하다”고 말했다.

○ 농사는 장애 치료에도 긍정적

23일 경기 화성시 송산면 경기도직업개발연구센터 내 해피투게더 농장에서 지적장애인들이 자신들이 기르는 노란색 메리골드 화분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이성호 기자
23일 경기 화성시 송산면 경기도직업개발연구센터 내 해피투게더 농장에서 지적장애인들이 자신들이 기르는 노란색 메리골드 화분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이성호 기자
농사는 장애 치료에도 긍정적이다. 흙과 꽃을 만지며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연치료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센터장을 맡고 있는 오길승 한신대 재활학과 교수(54)가 2008년 지적장애인 4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토마토와 팬지 등을 직접 재배하면서 이들의 사회화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 자아존중감 등이 모두 높아졌다.

부자유스럽던 신체 능력도 좋아졌다. 연구에 참여한 장애인 모두 근육 운동성 평가에서 일반 장애인 평균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감정 조절이 안 돼 각종 신경안정제를 밥 먹듯이 복용했던 26세 지적장애인은 지난해 이곳에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돼 모든 약을 끊었다. 장애인들의 자립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해피투게더 농장에서 일하는 14명은 4대 보험에 가입돼 있고 매달 80만 원 안팎의 급여를 받는다.

오 교수는 “상당수 지적장애인이 단순 제조업에 종사하면서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며 “안정적인 급여는 물론이고 치료 효과까지 있는 1차 산업 계통의 일자리를 더욱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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