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하나 뽑는데… 중증 장애인은 전신마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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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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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유일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 가보니…
위생사 따로 보조… 목 받쳐주고 자세 잡아줘 편하게
버스 개조해 이동진료도… 적자 메울 정부 지원 절실


《“하나 둘 셋 하면 저희가 몸을 올려 드릴게요. 불편하시면 말씀하세요. 자, 하나 둘 셋!” 16일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의 한 치료실. 여성 치과위생사 두 명이 휠체어를 탄 60대 남자 장애인 환자를 능숙하게 들어올려 치과 진료대에 사뿐히 앉혔다. 옆 진료대에서 ‘윙’ 하는 치과 기계 소리가 나자 환자는 긴장한 듯 그쪽을 쳐다봤다. 직원이 환자의 목 뒤에 부드러운 베개를 받치고, 불편한 다리 자세를 고쳐주자 환자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었다. 옆에 있던 치과위생사가 “그나마 장애가 가벼운 환자여서 쉽게 진료대에 앉힌 것”이라며 “중증 장애인은 마취하거나 줄로 묶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홍익동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에서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 치과치료를 받고 있다. 비장애인의 편견과 낮은 건강보험 수가 때문에 장애인을 치료할 수 있는 치과병원은 거의 없다. 박영대 기자
서울 성동구 홍익동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에서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 치과치료를 받고 있다. 비장애인의 편견과 낮은 건강보험 수가 때문에 장애인을 치료할 수 있는 치과병원은 거의 없다. 박영대 기자
개원 5년째를 맞은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은 국내에서 유일한 장애인 전용 치과다. 서울시와 서울시치과의사회가 뜻을 모아 설립했다. 첫 해 2400명 수준이던 환자 수는 지난해 1만8500명을 넘어섰다. 예약하고 진료를 받기까지 1∼2개월이 걸린다. 서울시 성동구 홍익동에 있는 이 병원에는 서울뿐 아니라 인천 경기 지역 환자들도 온다.

전국에 1만2000개가 넘는 치과 병의원이 있지만, 중증 장애인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몸을 스스로 가눌 수 없는 소아마비 환자는 입을 오래 벌리고 있거나, 몸을 얌전히 고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몸을 묶는 특수 장비가 필요하다. 발달장애나 뇌병변 환자는 아예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일반 치과 중에는 이런 설비를 갖춘 곳이 없다.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 242만 명 중 약 36만 명이 일반 치과를 이용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으로 추정된다.

이날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을 찾은 유진영 (가명·47) 씨는 오랫동안 간질을 앓아 마취를 해야 했다. 간질 약을 장기간 복용하면 잇몸이 과도하게 자란다. 커진 잇몸이 치아를 덮으면서 통증도 심해지고, 음식물 씹기도 힘들어진다. 유 씨를 치료한 치과의사 황지영 씨는 “중증 장애인일수록 스스로 치아관리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마취 뒤 여러 구강 질환을 한꺼번에 치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병원까지 오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치료하기 위해 45인승 버스를 개조한 이동진료소를 운영 중이다. 장애인학교나 시설에 주기적으로 찾아간다.

중증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치과가 적은 이유는 ‘환자를 받을수록 적자가 가중되는’ 구조 때문이다. 몸이 불편한 환자를 도울 보조 인력도 필요하고, 한 사람당 치료하는 시간도 배로 든다.

장애인 치과 치료가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비장애인들이 중증장애인과 함께 진료받는 것을 꺼리기 때문. 병의원들은 비장애인들의 거부감을 없애려면 장애인용 출구와 진료실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현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소속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서울·경기 소재 특수학교에 재학 중인 장애아 학부모를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380명 중 141명(37.1%)이 치과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진료 거부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보건복지부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전남대병원과 단국대병원 천안캠퍼스에 이어 올해 전북대병원과 제주도립재활전문병원을 장애인 치과치료 거점 병원으로 선정했다. 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건물 공사비를 절반씩 부담한다. 전남대병원과 단국대병원이 올해 11월 개원할 예정이다.

그러나 단순히 병원만 늘린다고 해서 장애인 치과 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명진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장은 “새로 개원할 병원들에 앞으로 예상되는 적자를 보전해주는 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며 “지자체나 정부의 지원이 없는 한 이들 병원이 지속적으로 장애인 치료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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