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세이]화산재 뿌린 검은 하늘을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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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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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문제의 가장 건강하고 안전한 해결책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다. 지난해 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국가지도자들이 코펜하겐 기후회의에 모인 이유도 이런 해결책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막는 또 하나의 방법은 대기 중에 햇빛을 차단하는 물질을 뿌려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대형 화산 폭발로 화산재가 지구를 덮으면 온도가 한동안 낮아진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온도를 낮출 수 있을지 몰라도 광범위한 지역의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 온실가스가 바닷속에 녹아 유발되는 어장 파괴, 에너지 자원 고갈 등의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이런 방법은 당뇨병 환자에게 단것을 먹이면서 인슐린을 주사해 혈당을 낮추는 것과 같다. 인슐린 주사를 멈추면 환자의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는 것처럼 햇빛 차단 물질을 대기 중에 살포하는 것을 멈추면 단기간에 기온이 상승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따라서 이런 방법을 지지하는 사람은 매우 소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올 3월 18일 영국왕립학회는 향후 화산재를 인공적으로 살포할 가능성에 대비해 국제 규제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이 이런 주장을 벌인 것은 나중에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면서 시간에 쫓길 경우 실제로 이 기술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궁지에 몰리면 이 카드를 사용할 수 있으니 아예 처음부터 손발을 묶어 놓자는 것이다.

이런 논의까지 나온 것은 지난해 말 코펜하겐에서 강력한 국제합의가 만들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동참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해피엔딩’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건강관리를 포기하고 약물치료에 의존하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모든 국가가 동참하지 않는다면 매일같이 화산재를 공중에 뿌리면서 어두운 하늘 아래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김지석 주한 영국대사관 선임기후변화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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