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교장 157명 ‘수학여행 뒷돈’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30일 03시 00분


관광 - 숙박업체서 60만~3000만원 사례비 받은 혐의
퇴임교장이 ‘영업사원’ 나서… 53명 입건 104명 조사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등 단체행사를 치르는 과정에서 관광업체로부터 수천만 원의 사례비를 챙긴 초등학교 교장들이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9일 학교 단체행사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서울 S초등학교 교장 김모 씨(60) 등 전현직 학교장 53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104명의 전현직 교장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또 교장들에게 금품을 건넨 관광업체 대표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S초등학교 김모 교장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수학여행, 수련회 등을 치르며 사례비 명목으로 H관광업체 대표 이모 씨(54)로부터 9차례에 걸쳐 2020만 원, 숙박업체 대표 진모 씨(78)로부터 4차례에 걸쳐 800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나머지 불구속 입건된 교장 52명도 비슷한 방법으로 업체들로부터 60만 원에서 3000여만 원까지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관광업체가 여행을 다녀온 뒤 사례비를 건네는 관행이 장기간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며 “일부 업체는 학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교장에게 선금을 지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숙박업소는 학생 1인당 2박 3일 숙박에 8000∼1만2000원을, 관광업체는 버스 1대당 하루에 2만∼3만 원의 사례비를 교장들에게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업체 대표들은 경찰 조사에서 “학교 단체행사 수주 경쟁이 치열해서 영업 전략으로 업체 선정 권한을 가진 교장에게 돈을 건넸다”고 말했다.

경찰은 서울 지역 초등학교에서 단체행사를 하면서 학생들이 낸 참가비 일부를 학교장이 되돌려 받는다는 첩보를 입수해 작년 9월부터 수사해왔다. 경찰은 2곳 업체에서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수도권 157개 학교장이 돈을 받은 정황을 포착했다.

경찰에 적발된 157명 중 137명은 서울 지역, 20명은 경기 지역 교장이다. 경찰은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해당 시도교육청에 적발된 교장들의 명단을 통보할 방침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수사 결과를 통보받는 대로 비리 연루자를 엄중 문책하겠다”고 밝혀 대규모 교장 징계 사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 적발된 교장은 8명을 제외하고 모두 초등학교 교장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안팎에서는 “초등학교에서 수학여행 업체 비리가 만연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라며 예견된 일이라는 반응이다. 출신 학교와 전공과목이 다양한 중고등학교 교장과 달리 초등학교 교장은 특정 교대 출신자가 대부분이어서 서로 업체를 소개해 주면서 비리에 연루되기 쉽기 때문이다. 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일선 학교에서는 수학여행을 가면 ‘숙박비는 교장 몫, 교통비는 교감 몫’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시교육청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전직 서울 지역 초등교장회 회장이 교장들에게 특정 업체의 영업사원인 전직 교장들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 뿌리기도 했다”며 “이 과정에서도 뒷돈이 오갔을 수 있다”고 말했다. 퇴임한 전직 교장이 수학여행 알선 업체의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도 “수사 대상에 전직 교장이 개입된 업체도 있다”며 “아직 혐의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계속 수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4월까지 수사를 마무리한 뒤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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