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3일째 침묵… 무관해서? 무관한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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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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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北, 놀란 지구촌

“北연루 가능성 있다”
① 보복이라면 왜 밤에 몰래
② 北美대화 등 민감 시기에 전쟁 부를 도발 했겠나
③ NLL 12km 남쪽지점적 잠수정 침투 어려워
④ 1,2차 연평해전과 달리 감청-레이더 포착 없어

“지나친 억측”
① 대청해전 패배 보복
② 유화공세 안 먹히자 군사모험주의로 전환
③ 분쟁지역 부각시켜 美에 평화협정 압박
④ 화폐개혁 반발 무마 대남 무력 분쟁 의도


북한은 천안함 침몰 사흘째인 28일까지 대내외 매체를 통해 보도나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 북한이 잠수정을 침투시켜 어뢰를 발사하거나 침몰 지점 바다 밑바닥에 감응기뢰를 설치해 이번 사건을 일으켰을 것이라는 관측이 난무하지만 북한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번 천안함 침몰의 유력한 용의자로 북한이 꼽히는 것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북한이 처한 대내외 환경과 그 속에서 북한 지도부가 선택한 정책들을 살펴볼 때 이런 도발을 할 개연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정치적 의도와 관련해 4가지 가능성을 제기했다.

해병대원 부대 복귀 서해 백령도 장천포구 부근 해상에서 경비 활동 중이던 해군 초계함 천안함(1200t급)이 침몰한 가운데 해병대원들이 27일 백령도항에 도착해 부대로 향하고 있다. 백령도=전영한 기자
해병대원 부대 복귀 서해 백령도 장천포구 부근 해상에서 경비 활동 중이던 해군 초계함 천안함(1200t급)이 침몰한 가운데 해병대원들이 27일 백령도항에 도착해 부대로 향하고 있다. 백령도=전영한 기자
첫째, 북한이 지난해 11월 10일 대청해전 패배에 대한 보복 도발을 감행했을 가능성이다. 당시 북한 경비정은 남한 해군 함정들이 쏜 함포와 해안포 4950여 발을 맞고 퇴각했다. 북한 매체들은 해전 직후인 11월 2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해군사령부를 방문해 격려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한 대북 소식통은 “김 위원장은 이날 방문에서 해군사령관을 전격 경질하고 보복을 지시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후 북한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측 수역에 평시사격구역을 선포(2009년 12월 21일)하고 서해 NLL 인근 해상에 해안포를 발사(2010년 1월 27일)하는 등 해역 부근에서 긴장의 수위를 높여왔다.

둘째, 북한이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반발로 이번 사건을 일으켰을 가능성이다. 남북관계는 지난해 하반기 한때 대화국면이 조성됐지만 최근 악화되는 추세다. 지난해 8월 시작된 남북 정상회담 개최 논의는 11월 7일 개성회담을 끝으로 사실상 결렬됐다. 북한은 회담 3일 뒤인 10일 대청해전을 일으켰고 이후 남한의 북한 급변사태 대비계획과 한미 연합군사연습에 대해 ‘거족적 보복성전’과 ‘무자비한 보복’을 공언해 왔다.

셋째, 북한이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참여를 앞두고 한반도, 특히 서해 NLL 해상이 여전히 군사적 분쟁지역이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상기시켜 미국에 평화협정 체결을 압박할 의도로 군사적 도발을 벌였을 가능성이 있다.

넷째, 북한 지도부가 화폐개혁 및 외환통제 정책의 실패로 인한 주민과 엘리트의 반발을 억누르고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은의 후계체제 구축을 앞당기기 위해 대남 무력 분쟁을 의도했다는 관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 도발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첫째, 초계함 수중 타격은 대청해전 패배에 대한 보복이라기에는 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 정부 당국자는 “북한 지도부가 대청해전 패배를 보복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겠지만 정상적인 교전이 아니라 밤에 몰래 초계함을 타격하는 것이 보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 김정일 위원장이 조만간 중국을 방문하고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을 미국에 보내 북-미 직접대화를 추진하는 등 대외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한반도에 자칫 전쟁을 부를 수 있는 무모한 도발을 감행했겠느냐는 주장도 많다.

셋째, 서해 NLL에서 백령도와 대청도 쪽으로 12km가량 떨어진 사고 지점은 북한이 잠수정 침투나 기뢰 부설을 꾀하기에는 너무 멀다고 당국자들은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대남 도발을 간접 확인할 감청 정보 등 결정적 단서가 나오지 않고 있다. 북한이 1999년과 2002년 1, 2차 연평해전을 도발할 때는 지휘부와 경비정의 교신내용과 해상 이동 상황 등이 한미 정보당국에 신호정보(SIGINT)로 사전에 포착됐지만 이번에는 그런 정보가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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