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산책]이진주/‘신분의 사다리’와 숨막히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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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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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말대로 신분의 사다리를 한 칸이라도 올라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 사다리를 죽기 살기로 올라가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밑에 있겠죠. 결국 못 올라간 사람의 변명이지만.”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주인공 세경은 마지막 회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세경이 검정고시를 포기하고 이민을 가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 장면을 보면서 김예슬 학우의 대자보를 떠올렸다.

10일 고려대 후문에 붙은 김예슬 학우의 대자보는 끝없는 경쟁으로 점철된 대한민국 사회와 제 기능을 잃어버린 대학을 꼬집었다.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신분의 저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을 자리였다. 하지만 그는 신분의 사다리를 걷어차겠다고 했다. 다시 ‘지붕킥’을 돌아본다. 스무 살의 가사도우미 여자애가 검정고시를 보지 않겠다고 결정한다. 이 결정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본인의 말마따나 ‘김예슬’이라는 작은 돌멩이 하나가 빠졌어도 대학이란 거대한 석탑과 사회의 질서는 끄떡없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열람실 안은 후끈거린다. 경쟁의 열기는 가장 먼저 냄새로 다가온다. 열람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사람들의 체취다.

대학교인지 취업 준비생 수용소인지 모르겠다. 책상에 놓여 있는 책과 노트북컴퓨터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동영상 강의는 우리가 열람실에서 꾸는 꿈을 말해준다. 대학생의 꿈은 회계사, 삼성맨, 고급 공무원 정도로 압축된다.

김예슬 학우는 명문대라는 관문을 통과했지만 그 앞에는 취업이라는 또 다른 관문이 있었다며 이제야 이 사회의 경쟁은 끝이 없음을 알아차렸다고 털어놓았다.

김예슬 학우는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가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서 준다면 좋겠다. ‘지붕킥’ 세경의 진심 어린 고백이 지훈의 자각을 불러일으켰듯이 자신이 만들어 낸 작은 균열을 조금씩 더 확대하고 우리들을 자각시켜 준다면 좋겠다. 이 숨 막히는 사회와 열람실의 공기에 최적화 모드로 적응하는 법을 익히는 게 아니라 이 공기를 어떻게 하면 깨끗하게 바꿀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새로운 자각이 필요하다.

이진주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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