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령 속살, 칼로 상처낸 듯 곳곳에 ‘불법 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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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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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김용석 기자 특별단속반 일일체험

등산객의 출입이 통제된 북한산 상장능선에 난 샛길. 샛길이 한번 생기면 경사면이 침식되고 수목 뿌리가 노출되는 등 자연훼손이 계속된다. 또 쉽게 원상회복되지 않아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김용석 기자
등산객의 출입이 통제된 북한산 상장능선에 난 샛길. 샛길이 한번 생기면 경사면이 침식되고 수목 뿌리가 노출되는 등 자연훼손이 계속된다. 또 쉽게 원상회복되지 않아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김용석 기자
《서울 강북구 우이동과 경기 양주시 장흥면을 잇는 북한산 우이령길이 지난해 7월 일반에 개방된 이후 훼손이 심해지고 있다. 입산금지구역을 오가는 등산객들이 만들어놓은 샛길 때문이다. 샛길은 한번 생기면 쉽게 사라지지 않아 생태계 파괴가 우려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최근 발족한 특별단속반 대원들과 함께 지난달 2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경까지 우이령길 단속 현장을 찾았다.》
일부 등산객 코스 가로질러
작년 개방이후 훼손 심해져
멧돼지 등 동물 서식지 잃어

○ 등산객과 숨바꼭질하는 단속 현장

“쉿!” 약 500m 높이의 상장능선에 올라 숨을 고르던 단속반원들이 갑자기 숨을 죽였다. 멀리서 낙엽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기다리니 소리가 멀어졌다. 단속반은 빠른 걸음으로 소리가 나는 쪽을 쫓았다. 하지만 소리의 주인공을 찾지 못했다. 이런 숨바꼭질은 자주 벌어진다고 했다.

“등산을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능선에서 단속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죠. 낌새를 채고 멀리 피해 다닙니다. 능선 밑 길이 없는 곳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단속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북한산관리사무소 우이분소 지형우 주임)

지난달 27일 북한산 우이령길에서 등산객 위반행위 단속에 나선 국립공원관리공단 특별단속반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용석 기자
지난달 27일 북한산 우이령길에서 등산객 위반행위 단속에 나선 국립공원관리공단 특별단속반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용석 기자
우이령을 가로질러 상장능선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한북정맥 종주 코스의 마지막 부분이라 입산금지 단속을 피해 등산을 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또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을 잇는 이른바 ‘불수도북’ 코스로 밤 산행을 즐기는 사람 중 일부가 상장능선으로 들어오는데 이들을 단속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상장능선 여러 곳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음료수를 마신 흔적이 눈에 띄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상장능선은 입산금지 구간인데도 이곳의 등산정보를 소개하는 글이 많았다.

○ 개방 6개월 만에 샛길 하나둘 생겨나

개방 전부터 존재한 샛길 4개 외에도 상장능선, 도봉주능선에서 우이령으로 이어지는 구간에서 새로운 샛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중 한 곳을 보니 길 주변에 심어놓은 나무가 조금 훼손됐다. 길 위를 덮은 낙엽도 흩어져 허연 흙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샛길이 한번 생기면 훼손이 점점 커진다. 지표수가 증가해 배수로가 생겨난다. 길 주변이 깎여 나간다. 마치 분지처럼 변하기도 한다. 주변 나무와 풀의 뿌리가 노출되고 길의 폭은 점점 더 확대된다. 이로 인해 길 양쪽의 생태계가 분리되는 피해가 생겨난다.

우리나라에서 연간 가장 많은 등산객이 찾는 북한산은 74개(총연장 160km) 탐방로 외에 365개(총연장 222km)의 샛길로 훼손되고 있다. 샛길은 북한산을 605조각으로 나눈다. 면적이 더 큰데도 491조각으로 나뉜 지리산과 비교하면 북한산은 갈가리 찢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관리공단은 샛길과 탐방로를 폐쇄하는 방식으로 북한산의 조각을 90개, 35개로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기로 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 샛길로 갈 곳 잃는 동물들

단속을 위해 우이령길을 벗어나 상장능선 쪽으로 향했다. 길도 없는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자마자 움푹 파인 진흙 구덩이가 나타났다. 구덩이 안에서 가마니를 이리저리 굴린 듯한 자국이 보였다. 멧돼지가 진흙 목욕을 한 흔적이다. 구덩이 앞에는 밤톨만 한 멧돼지 배설물이 널려 있었다.

상장봉을 중심으로 한 북한산 지역은 수십 년 동안 등산객 출입이 금지돼 멧돼지, 산토끼, 너구리, 대륙족제비, 고슴도치, 두더지 등의 좋은 보금자리가 됐다. 멧돼지가 살려면 10∼20km²의 생활공간이 확보돼야 한다. 샛길로 605조각으로 나뉜 북한산의 조각당 평균 면적은 0.13km²에 그친다. 멧돼지는 물론이고 두더쥐 생활권(2km²)이나 다람쥐 생활권(3.9∼6.8km²)에도 훨씬 못 미친다. 관리공단 보고서에 따르면 생활공간 파편화로 서식지 면적이 감소하면 일부 동물이 격리돼 멸종할 수도 있다.

북한산관리사무소 이원후 주임은 “열매를 먹은 뒤 배설물을 통해 식물을 이곳저곳으로 퍼뜨리는 동물의 역할은 숲을 건강하게 하는 데 필수”라며 “비교적 넓은 공간이 보전된 상장봉 주변 지역마저 샛길로 분리되면 멧돼지 등 북한산의 동물은 갈 곳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이날은 흐린 날씨 탓인지 등산객이 적어 상장능선에서 단속된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박선규 국립공원관리공단 홍보실 과장은 “아직도 곳곳에 숨어서 흡연, 취사를 하거나 입산금지 구역을 오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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