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디지털 원시인’ 우리 엄마아빠 말이 안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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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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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3 PMP스마트폰… 용도도 깜깜 작동법도 깜깜
정말 필요한 걸까? 저걸로 뭘할까?… ‘기계치 부모’의 고민

“얘, 오늘 낮에 엄마가 홈쇼핑을 보는데 ‘아이폰’ 팔더라? 한 달에 10만 원 정도 쓰는 요금제로 3년 약정하면 글쎄 아이폰이 공짜래. 엄마가 아들 선물로 하나 사줄까?”(주부 송모 씨·45)

“(깊은 한숨을 쉬며) 엄마, 장난해? 이어폰 아니고 아이폰 맞아? 아님 ○○아이폰 말하는 거 아냐? 그건 셀카(셀프카메라) 찍으면서 상대방 사진도 동시에 찍을 수 있는 휴대전화고∼. 아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아는 척 하지 마.”(고1 김모 군·16)

송 씨는 아들의 원을 풀어줄까 싶어 말을 꺼냈다가 따끔한 핀잔에 상처를 받았다. 평소 전자제품에 관심이 없던 아들은 최근 아이폰에 ‘꽂혀’ 매일같이 포털 사이트의 아이폰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에 들락날락했다. 비싼 가격도 가격이지만 바꾼 지 6개월도 안 된 터치폰이 있는데도 왜 그렇게 빠져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송 씨. 홈쇼핑에서 공짜로 준다기에 요금을 좀 더 내더라도 사줄까 싶어 말을 꺼냈는데 알고 보니 이름이 유사한 다른 제품이었다. 뉴스와 신문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인기 폭발 스마트폰’ ‘아이폰으로 다이어트 댄스’ ‘아이들을 위해 설치해야 할 아이폰 앱(애플리케이션) 1위’라고 떠들지만 송 씨에겐 영 생소하다. 송 씨는 “사주고 안 사주고를 떠나 아들이 왜 저렇게 아이폰에 푹 빠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면서 “‘엄마는 말해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아들과 얘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 더 문제”라고 하소연했다.

‘기계치’인 학부모와 ‘디지털 키드’인 자녀의 소통에 빨간불이 켜졌다. 첨단 디지털 제품과 함께 성장한 자녀세대와 아날로그에 익숙한 부모 사이에 생기는 소통의 단절은 심각한 수준. 자투리 시간에 MP3플레이어로 영어듣기를 한다거나 야간자율학습 때 PMP(휴대용멀티미디어플레이어)로 취약과목 인터넷강의(인강)를 보는 것은 요즘 세대에게 너무도 익숙한 공부법. 자녀들이 “요즘 MP3 없는 애들이 어디 있느냐” “PMP로 인강 열심히 들어서 성적 꼭 올리겠다”며 사달라고 조르지만 부모로선 공부에 진짜 도움이 되는지, 기계로 허튼짓은 하지 않는지, 왜 그 제품이 꼭 필요한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초등 5학년 아들을 둔 주부 박모 씨(40·경기 성남시 분당구)는 며칠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개학 첫날 아들의 책상 서랍에서 아들이 제 몸처럼 아끼고 있던 MP4플레이어를 발견한 것. 기말고사 때 평균 95점을 넘겨 포상으로 사준 것이었다. 까만 직사각형 표면에는 버튼이 하나도 없었다. 무엇을 눌러야 할지 몰라 요리조리 만지던 중 오른쪽 윗부분에 튀어나온 작은 버튼을 꾹 누르니 갑자기 화면이 켜졌다. 화면에는 배우 조인성이 주연한 영화 ‘쌍화점’의 한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배우들의 노출과 선정적인 정사장면으로 화제가 됐던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다. 박 씨는 “학원 버스에서 좋아하는 가요를 들으면서 스트레스 풀라고 사줬는데 그 동영상을 본 순간 너무 놀라 손이 다 떨렸다”면서 “설마 우리 아이가 그럴 거라고 상상도 못했는데…. 사주기만 하고 한번 켜보지도 않았던 내 잘못도 크다”고 말했다.

기계치 부모의 가장 큰 문제는 자녀가 그 기계로 무엇을 하는지 점검도 관리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유해한 영상을 보거나 공부 외의 용도로 사용할 우려가 커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인강만 들어 있는 PMP는 아이들 사이에서 ‘순결한 PMP’로 불리며 ‘천연기념물’ 취급을 받는다. 학부모 김모 씨(45·여·대구 남구)는 PMP를 사달라고 조르는 고2 아들에게 “MP3플레이어도 있는데 뭘 또 사냐?”면서 구박부터 했다. 자신의 MP3플레이어는 동영상 지원이 되지 않기 때문에 PMP가 꼭 필요하다는 아이의 주장에 아이와 함께 제품을 골라야겠다고 생각한 김 씨.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 올라오는 수십 개의 제품을 보며 아들은 “이 PMP는 강의를 켜고 끄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이건 강의만 들을 수 있어서 불편해”라고 설명했지만 김 씨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결국 결제 33만 원만 김 씨의 몫이었다.

구입 후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아들 방에 들어간 김 씨는 이어폰을 끼고 화면을 보며 키득키득 웃고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버럭 화를 내며 “지금이 어느 땐데 TV를 보고 있어? 공부하겠다고 비싼 돈 주고 사줬더니 엄마 속이고 TV를 봐?”라며 잔소리를 퍼부었다. 한참 무표정하게 듣던 아들은 “뭐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혼만 내. 인강 듣고 있던 거거든!”이라며 강의 화면을 보여줬다. 김 씨는“내가 모르는 사이에 버튼 하나만 누르면 다른 화면을 켤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 씨(43·여)는 최근 고2 딸의 아이폰을 처음 들여다봤다. 딸이 학원에 가면서 놓고 간 아이폰을 발견한 김 씨. 화면이 켜지는 버튼을 누른 뒤 잠시 설거지를 하고 돌아와 다시 버튼을 눌러보니 검은색 화면에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고장이 났나 싶어 다급한 마음에 아이폰을 샀던 대리점으로 달려갔다. 직원이 아이폰의 네모 표시가 된 버튼과 함께 위쪽의 전원 버튼을 동시에 길게 누르자 화면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김 씨는 “휴대전화 하나 켜고 끌 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창피하기도 하고 이 요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아득하다”고 하소연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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