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 재래시장, 지금은 ‘美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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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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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걸려 있던 정육점 앞 나무그네 걸리고
참기름-반찬냄새 가게 옆엔 ‘싱싱한’ 그림이…
예술가들 “이색 전시”- 상인들 “매출 늘어” 희색

■ 썰렁했던 홍통거리의 변신

서울 홍익대 앞 ‘서교재래시장’에서는 15일부터 이색 미술전시회 ‘일기병’이 열리고 있다. 관람객들이 조수옥 작가의 작품 ‘엄마 상자’를 구경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마포구
서울 홍익대 앞 ‘서교재래시장’에서는 15일부터 이색 미술전시회 ‘일기병’이 열리고 있다. 관람객들이 조수옥 작가의 작품 ‘엄마 상자’를 구경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마포구
《서울 홍익대 앞에 ‘재래시장 미술관’이 생겼다. 고기가 걸려 있던 정육점 입구에는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 나무 그네가 걸려 있다. 야채가게와 식료품가게가 있던 132m²(약 40평) 남짓한 공간에는 작가 12명의 조각과 그림, 사진 작품들이 아기자기하게 전시돼 있다. 모두 손님이 없어 비워버린 ‘서교재래시장’ 점포 자리다.》

이곳에선 15일부터 한 달간 이색 미술전시회 ‘일기병(一期病)’이 열리고 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재래시장이 올해 말 상인들과 예술가 모두에게 희망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 홍대 앞 외딴섬에서 보물섬으로

서교시장은 홍익대 특유의 시끌벅적한 술집과 빈티지 의류 골목이 즐비한 ‘홍통거리’에 있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서부터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밀려온다. 반찬가게에서 나는 짭조름한 젓갈 냄새와 방앗간에서 갓 쪄 내놓은 김나는 떡이 재래시장에 왔음을 실감케 한다. 1974년 문을 연 시장은 넉넉지 않던 시절 특유의 인심으로 서교동과 합정동 단골손님을 대거 확보했다. 1989년에는 새로 지은 상가 지하로 입주하면서 점포가 169개까지 늘었다. 하지만 시장에 비해 바깥세상은 너무 빨리 변했다. 홍대 앞 상권은 몰려드는 젊은이들로 호황을 누렸지만 시장은 더 썰렁해졌다. 떠나는 상인들이 늘면서 점포는 54개로 줄었다. 시장은 점점 지하 ‘외딴섬’처럼 고립돼 갔다.

그랬던 시장은 최근 지역예술가들과 손을 잡고 ‘보물섬’으로 변신 중이다. 홍대 근처에서 전시회를 열려면 대관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 1년 전부터 기획서를 제출해야 하는 등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예술가들은 전시회 한 번 열기가 쉽지 않다. 홍대 앞에서 공예품 가게를 운영하는 조수옥 작가는 전시공간을 찾던 중 우연히 시장에 들렀다 아이디어를 얻었다. 빈 점포를 빌려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조 작가의 제안에 상인들은 반신반의하며 공간을 무료로 내줬다.

○ 희망찬 연말을 맞은 예술가와 상인

전시회 이름은 만들고 그리는 일에 푹 빠져 일생 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작가들의 인생에 빗대어 ‘일기병’이라 정했다. 20대부터 4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들은 3일간 직접 때가 끼어 회색빛으로 변한 벽을 흰 페인트로 칠했다. 못이 박혀 있던 자리에는 알록달록한 벽화를 그려 넣었다. 그렇게 준비된 전시공간에는 자녀에게 선물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표현한 작품부터 사회비판적인 그림까지 주제와 소재를 넘나드는 작품 150여 점이 진열돼 있다. 5만 원짜리 액자부터 29만 원짜리 가림용 발 등 가격대도 다양하다.

24일 찾은 시장 한구석에는 반찬가게와 솜이불집을 배경 삼아 운동화 리폼 작업에 푹 빠져 있는 대학생 커플들이 있었다. 늘어나는 젊은 손님들에 가장 놀란 사람은 상인들이다. 김종백 시장 관리소장은 “전시회 유치 이후 점포마다 매출이 평균 30%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는 내년 3월부터 10월까지 화장실 등 내부보수 공사를 지원한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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