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멈췄다, 고시 女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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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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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사시-행시-외시-한은 女합격자 비율 동반 급감, 왜?
[1] 금융위기 있었다
우수 男구직자 안전직장 선호
[2] 女면접관 늘었다
女지원자 점수 짜게 주는 경향
[3] 연령상한 없앴다
기업 채용 줄면서 男응시 몰려

‘고시 여풍(女風)’도 금융위기 쓰나미에 수그러든 것일까.

올해 한국은행 및 사법시험 행정고시 외무고시를 비롯한 국가고시 등 주요 시험에서 여성 합격자 수가 일제히 감소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남성 합격자 비율이 압도적이던 이들 시험은 2000년대 들어 여성 합격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으나 올해는 모두 여성 비율이 크게 떨어졌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신입직원 최종합격자 36명 중 여성은 10명으로 여성 합격자 비율이 27.8%로 나타났다. 지난해 36명 중 17명을 차지해 47.2%에 이르던 여성 비율이 19.4%포인트나 급락한 것. 상경계열 대학생의 최고 선호직장 중 하나인 한은은 1990년대까지는 여성 비율이 극히 낮았으나 2000년 이후 빠른 속도로 늘어 올해는 반수도 넘길 수 있다는 예상이 많았다.

올해 여풍 퇴조는 한은뿐 아니라 주요 국가고시에서 모두 나타난 현상이다. 행시 합격자 가운데 여성은 244명 중 114명(46.7%)으로 지난해(51.2%)에 비해 4.5%포인트 떨어졌다. 외무고시의 여성 비율도 지난해 65.7%에서 올해 48.8%로 16.9%포인트 급락했다. 사법시험도 35.3%로 지난해보다 9%포인트 하락했다. 사시 행시 외시의 여성 합격자 수가 모두 감소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처럼 주요 시험에서 올해 갑자기 여풍이 주춤해진 데 대해 금융위기의 영향이 있는 데다 경기침체로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우수한 남성 지원자들의 ‘안전직장 선호 현상’이 강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 금과 같은 안전자산이 선호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안정성을 중시하는 여성에 비해 ‘고위험 고수익’의 민간회사를 선호하는 비율이 높던 우수한 남성 대졸자들이 고시나 중앙은행 같은 안정적 직장으로 몰린다는 것.

면접 준비에 여성보다 소홀하던 남성들이 취업난이 이어지면서 준비를 철저히 해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채용면접에 참여한 한은 간부는 “작년엔 여성 지원자들이 면접에서 말도 워낙 잘하고 똑똑했는데 올해는 반대로 우수한 남성 지원자가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한은 지원자의 여성 비율이 지난해(37.9%)와 올해(35.9%) 큰 차이가 없는 것을 보면 우수한 남성 비중이 높아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올해 여성 면접관 수가 늘면서 오히려 여성의 면접점수가 떨어졌다는 해석도 한은 내부에서 나온다. 남성 간부들이 여성 지원자에게 관대한 점수를 주는 반면 여성 면접관은 상대적으로 여성을 엄격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실제 지난해에는 실무면접관 24명 중 외부인사 1명만 여성이었지만 올해는 내부인사 2명을 포함해 4명의 여성 면접관이 참여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올해 없었던 것이 남성 합격률을 높인 요인이라는 색다른 해석도 나온다. 실제 고시정보지 ‘법률저널’이 1992∼2002년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합격자 통계를 분석한 결과 월드컵이 있는 해의 여성 합격률이 없는 해보다 평균 5%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시에서 응시연령 상한제한이 폐지된 것도 남성 비율이 높아진 원인으로 꼽힌다. 채용정보업체 커리어의 이정우 대표는 “민간 기업에서는 여전히 올해도 여풍이 지속되고 있다”며 “반면 올해 민간 채용문이 크게 좁아지면서 우수한 남성 인재들이 고시나 중앙은행 등 안정적인 직장에 대거 몰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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