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밥그릇 챙기기” 기업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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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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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에 ‘법조인 출신 준법지원인’ 의무화 추진

법사위, 상법개정안 내달 심사
“윤리경영까지 하는데 또 규제”
전경련 등 반대의견 제출


사실상 변호사로만 충원하는 준법지원인 제도를 상장기업에 의무적으로 도입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면서 기업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감사, 내부회계감시인에 이어 비슷한 일을 하는 직책이 추가돼 업무가 중복되고 비용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특히 준법지원인 자격을 사실상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로만 좁히면서 새 제도가 변호사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이용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8일 국회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8월 친박연대 노철래 원내대표, 민주당 조배숙 의원,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 등 국회의원 33명이 발의한 ‘상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다음 달 초 1차 심의할 예정이다. 소위원회를 거쳐 법사위를 통과하면 본회의에 상정된다. 이 개정안은 상장회사에 준법지원인을 1명 이상 두도록 강제하고 있다. 현재 금융회사만 두고 있는 준법감시인을 명칭을 바꿔 확대 배치하는 것.

이에 대해 재계는 ‘옥상옥(屋上屋)’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국회 법사위에 준법지원인 제도 도입 반대의견서를 냈다. 기업마다 법무실, 감사실, 내부회계관리자 등을 둔 터에 불필요한 규제가 더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구학서 신세계 부회장은 “이미 기업들이 준법을 넘어서 윤리경영까지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마당에 준법지원인을 두라는 것은 기업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발상”이라며 “기업인과 기업 활동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법조인 출신으로만 자격을 제한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개정안은 △변호사 △5년 이상 근무한 법학 조교수 이상 △법률적 소양을 지녔고 대통령령이 정한 요건에 적합한 사람으로 자격을 제한했다. 법대 교수 가운데 기업에 오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변호사로 대상이 묶인 셈이다. 기존 준법감시인은 공인회계사 등으로 문호가 열려 있는 편이다.

상장회사들은 개정안 내용이 워낙 광범위해 준법지원인 조항이 무사통과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법사위 소속 의원들이 법대 출신이거나 변호사가 많아 ‘친정 봐주기’ 식으로 판단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미국에서는 준법지원인이 의무화돼 있지 않다. 다만 문제가 생겼을 때 내부통제제도를 잘 갖춘 회사라면 책임을 감면해 준다. 또 준법지원인이 변호사 출신이어야 한다는 강제규정도 없다.

외국계 금융회사인 ING자산운용 최홍 사장은 “우리 회사의 준법감시인은 법대 출신의 금융업무를 잘 아는 사람”이라며 “법도 법이지만 해당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내부감시를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ING 본사도 최 사장에게 준법감시인 대상에 대해 ‘변호사면 좋겠지만 사정이 안 된다면 법률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면 괜찮다’는 지침을 준 바 있다. 금융계에는 변호사 출신이 아닌 준법감시인이 더 많다.

상장회사 관계자는 “회계관리인과 준법감시인을 통합하는 포괄적 내부통제제도를 두고 기업이 필요로 하면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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