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4724명에 ‘희망 씨앗’… 82% 대입 꿈이뤄

  • Array
  • 입력 2009년 10월 5일 02시 58분


코멘트
대전 유성구 계룡로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청소 봉사를 하고 있는 박힘찬(왼쪽) 박하늘샘 쌍둥이 형제. 이들은 아르바이트와 학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봉사활동에 나섰다. 사진 제공 한국청소년진흥센터
대전 유성구 계룡로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청소 봉사를 하고 있는 박힘찬(왼쪽) 박하늘샘 쌍둥이 형제. 이들은 아르바이트와 학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봉사활동에 나섰다. 사진 제공 한국청소년진흥센터
■열린장학금 5년… 장학생들 지금은
《삼성이 장학금을 출연해 동아일보와 공동으로 운영 중인 ‘삼성-동아일보 열린 장학금’이 4일 장학사업 5주년을 맞았다. 열린 장학금은 2004년 10월 4일 형편이 어려운 전국의 고등학교 1, 2학년생 2901명에게 41억1558만 원을 지원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만4724명의 고교생에게 253억7384만 원을 지급했다.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두 학기 수업료와 학교 운영비 전액을 지원받는다. 장학생 1명당 평균 172만 원을 받은 셈이다. 》
○ “학비 걱정 없이 미래 생각해요”
“분기마다 학교에서 노란 봉투를 받는 초조함을 아세요? 눈치 빠른 친구들은 교무실에 불려갔다가 가져오는 봉투에 미납된 수업료 고지서가 담겼다는 것을 다 알아요.”
2006년 당시 서울 금천고 2학년이던 이미현 씨(20)에게 수업료와 학교운영지원비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1분기에 대략 40만 원, 1년에 160만 원에 이르는 돈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운 이 씨의 집안 형편으로는 큰돈이었다. 식당 영양사로 일하며 생계를 책임지던 이 씨 어머니는 수업료를 내는 달이면 반찬비를 줄여야 했다. 어머니는 고지서가 나올 때마다 “너는 걱정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해라”라고 말했지만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친구들에게 수업료 납부를 깜빡 잊었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던 이 씨에게 수업료 걱정을 잊도록 만들어준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가 ‘삼성-동아일보 열린 장학금’이었다. 그는 “장학금 덕분에 학비 걱정 없이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지난해 숙명여대에 입학했다.
열린 장학금 수혜 학생 중 진학·취업 진학 및 취업 자료가 있는 6672명을 대상으로 졸업 후 진로를 분석한 결과 5597명이 대학에 진학했다. 4년제 대학은 서울대 68명, 고려대 60명, 연세대 61명을 포함해 모두 3654명이었다. 2년제 1943명이었다. 전문계(실업계) 고교 재학 중 열린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진학한 학생도 1309명에 이른다.
“가난과 세상 미워했는데… 이젠 달라졌어요”
경영학 가장 많아… 189명 보은하려 복지전공

○ 열린 장학금이 인생관 바꿔
열린 장학금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의 진로를 바꿔 놓은 ‘내비게이터’이기도 했다. 남서울대 사회복지학과 3학년 김선영 씨(21)는 열린 장학금을 받은 뒤 인생관이 바뀌었고 진로 선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경직성 하지마비를 앓고 있던 김 씨는 아버지가 버스 운전사로 일했지만 어머니도 장애가 있어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김 씨는 급식비가 없어 친구들과 밥을 나눠먹기도 했다.
김 씨는 어머니가 동아일보를 보고 신청해 송탄여고 1학년 때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김 씨는 “‘나는 안돼…’라고 생각했는데 장학금을 받은 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됐고 성적도 하위권에서 중위권으로 올랐다”고 회고했다. 장학금을 받은 뒤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한 김 씨는 장애인복지관, 노인복지센터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꿈은 사회복지사다.
김 씨처럼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며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한 장학생은 189명에 이른다. 진로 현황이 파악된 6672명의 대학 전공을 집계한 결과, 사회복지학과는 ‘열린 장학생’들이 네 번째로 많이 진학한 학과였다. 경영학(328명)이 가장 많았고, 전산·컴퓨터공학과(201명)와 간호학과(195명)가 그 뒤를 이었다.
○ “계속 도전할 거예요.”
2007년 서울 영훈고 2학년 때 장학금을 받은 주보라 씨(19)는 졸업 뒤 빵집 주방일과 포장 등을 하다가 최근에는 매일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7시 반까지 경기 동두천시 집 근처 어린이집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다. 주 씨는 “서울예대 방송영상과에 2009학번으로 합격했지만 등록금을 내지 못해 돈을 모으고 있다”며 “내 힘으로 돈을 벌어 대학에 가는 것이니 자랑스럽고 떳떳하다”고 말했다. 주 씨가 현재 모은 돈은 600만 원 정도 된다. 한 학기 등록금 낼 돈은 거의 모은 셈이다. 곧 같은 대학 같은 과에 다시 원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민경춘 삼성사회봉사단 전무는 “어렵지만 목표의식과 열정이 있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고 각종 봉사활동 지원과 개별 멘터링 프로그램을 통해 글로벌 리더로 육성하는 것이 목표”라며 “장학생들이 훌륭한 인재로 자라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달 최고 80시간 봉사…받은 사랑 나눠야죠”▼
박힘찬-하늘샘 형제

지난달 27일 오전 부슬비가 내리는 대전 유성구 계룡로 국립대전현충원. 헤어스타일까지 똑같이 닮은 쌍둥이 형제가 옷이 젖는 것은 아랑곳없이 청소를 하고 있다. 이들 형제는 2007년 열린 장학금 3기로 지원받아 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친 박힘찬, 하늘샘 씨(20)다. 힘찬 씨는 지난해 한국정보통신대(ICU)에 진학해 KAIST 정보통신학과에 재학 중이다. 하늘샘 씨는 올해 충남대 기계금속공학교육과에 입학한 대학생이다.
형제는 이날 참배객들이 음식을 담았다가 두고 간 접시나 술병을 치우고 거센 바람에 쓰러진 화분과 꽃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며 전체 묘역의 3분의 1가량을 깨끗이 청소했다. 평소에도 삼성사회봉사단 대학생 기자, 충남 계룡시 ‘늘푸른봉사단’으로 활동하며 시골 홀몸노인을 돕고 러시아 동포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는 등의 봉사를 한다. 형제는 “시간을 쪼개 한 달에 60∼80시간은 봉사활동에 할애한다”며 “장학금으로 받은 사랑을 사회에 돌려주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형제가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고교 시절 ‘해피투게더봉사단’(해투봉) 활동을 하면서부터다. 열린 장학금을 받고 있거나 받았던 고등학생, 대학생들은 2007년 8월부터 자발적으로 해투봉을 만들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보통 토요일 해투봉 소속 동아리별로 월 2회가량 봉사활동이 진행된다.
현재 130명가량이 활동하고 있는 해투봉은 동아리별로 봉사 내용도 다양하다. ‘보라’는 북한 이탈 청소년 대안학교인 ‘셋넷학교’의 청소년들이 검정고시를 통과할 수 있게 돕는 동아리다. 검정고시가 다가오면 밤을 새워 ‘올빼미 수업’을 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올해부터는 기부와 장애인 복지시설 방문 봉사 등을 통해 청소년들이 한국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도 시작했다.
‘비해피(BE HAPPY)’는 서울 관악구 관악아동복지센터에서 저소득층 가정 아동과 함께 체육, 미술, 뮤지컬 관람 등의 문화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H2O’는 취학 전 아동들에게 인형극으로 성폭력 예방과 대처법을 교육하다가 영역이 확대돼 지금은 사회극을 통한 청소년 문제 예방 활동을 하고 있다. ‘방파제’는 공부방 활동, 홀몸노인에게 도시락 배달 활동 등을 하는 부산 지역 동아리다. ‘파파라치’는 열린 장학생인 고등학생들에게 대학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열린장학금 사업을 주관하는 한국청소년진흥센터 이순원 장학사업팀장은 “해투봉이 아니더라도 다른 동아리 등을 통해 봉사활동을 하는 열린 장학생 출신 대학생도 많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열린 장학생’ 되려면
학교장-자율 추천 1500명씩… 학업계획서 써야

열린 장학금 신청은 매년 10월 이뤄진다. 신청 대상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전국 고교 1, 2학년생이다. 신청을 받은 후 다음 해에 장학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고3은 제외된다.
열린 장학금은 크게 학교장 추천(1500명)과 자율추천(1500명)으로 나뉜다. 학교장 추천 방식을 원할 경우 학교에 있는 장학교사, 담임교사에게 추천을 요청하면 된다. 본인을 비롯해 친구, 학부모, 지인 등을 통해 추천받는 자율추천 방식으로 신청해도 된다.
일단 신청자(본인 포함)는 열린 장학금 홈페이지(www.janghak.org)에서 신청서를 내려받아 자기소개서와 학업·미래에 대한 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자기소개서의 경우 막연히 ‘가정형편이 어렵다’라고 쓰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상황과 환경을 설명해야 한다. 학업 및 미래 계획서도 단순히 ‘장학금 받으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라고 쓰기보다는 연, 월 단위로 나눠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작성하는 것이 유리하다. 자신의 꿈과 학업계획의 연관성을 소개하는 것도 좋다.
신청서를 학교나 열린장학금 홈페이지에서 접수시키면 시도교육청 담당자, 자율추천 심사위원의 심사가 11월에 이뤄진다. 12월에는 학생 생활환경, 이중수혜 여부, 신청서 진위 등 선정적합성 현장실사가 진행된다. 최종 선정자는 다음 해 2월 발표된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