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어려운 문제일수록 가장 기초적인 방법으로”

  • 입력 2009년 9월 15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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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학교장 추천 전형’ 합격한 민준희 군

수학교과서 내용 손으로 쓰며 원리 이해
유형별 문제풀이보단 개념 문제풀이를

KAIST가 2010학년도 입시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학교장 추천 전형’을 통해 일반계 고교생 150명을 선발했다. 이 전형은 입학사정관제의 일종으로 성적과 개인 환경, 잠재력, 소질 등을 종합 평가했다. 합격자 가운데는 특정 분야에서 놀라운 집중력과 성과를 인정받은 학생이 많았다. 서울 한가람고등학교 3학년 민준희 군(18·사진)은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합격한 사례.

민 군은 다른 과목 성적은 다소 뒤지지만 수학내신이 줄곧 1등급인 데다가 교내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중학교 때부터 한국수학올림피아드, 한국수학경시대회 등에서 각종 상을 휩쓸었다. 많은 사람이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수학을 민 군이 잘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 일상생활 속에서 수학을 익히면 효과 만점

민 군이 일찌감치 수학에 눈을 뜬 것은 부모 덕분이다. 민 군의 어머니 이애경 씨(47)는 아들이 어렸을 적부터 실생활에서 수 개념을 익히도록 했다. ‘보도블록의 개수는 몇 개일까’ ‘두 나무 사이를 몇 걸음 만에 갈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던져 호기심을 자극했다. 나아가 이 씨는 ‘연필을 세 자루씩 두 사람에게 주려면 모두 몇 개가 필요할까’ 같은 질문을 수시로 했다.

그 때문일까. 민 군은 자동차 번호판, 전화번호 등을 금세 외웠다. 앞의 두 자릿수와 뒤의 두 자릿수의 합이 같다든지, 각 자릿수가 일정한 규칙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간파한 덕분이었다. 수학에 대한 호기심은 한글 자모음을 이용해 도형을 이해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많은 학생이 어려워하는 곱셈, 나눗셈 원리도 초등 저학년 때 터득했다. 당시 민 군의 방에는 늘 여러 개의 저금통이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민 군에게 갖고 싶은 물건을 한 번에 몇 가지씩 적게 한 뒤 물건별로 용돈을 주는 횟수를 달리했다. 그런 다음 지폐가 아닌 동전만을 이용해 저금통을 채우게 했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받은 용돈이 얼마이며, 전체 금액에 도달하기 위해 얼마를 더 받아야 하는지를 스스로 계산하도록 했다.

○ 수학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은 공부의 출발점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수학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수학책을 즐겨 읽었다. 민 군은 “수학책은 개념이나 원리를 실생활과 접목해 설명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고 재밌다”고 했다. ‘앗, 이렇게 재미있는 과학이’ 시리즈 중 수학편은 7, 8편을 반복해 읽었다. 수학을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학교 밖에서 자신의 실력이 궁금했다. 그래서 민 군은 중3 때 한국수학올림피아드에 도전했다. 수준 높은 문제로 대회를 준비하면서 수학에 ‘제대로’ 빠졌다.

민 군은 올림피아드 교재로 ‘올림피아드 수학의 지름길’을 택했다. 문제를 풀면 풀수록 기본개념을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 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해 자신감을 얻은 민 군은 많은 문제를 풀기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려운 문제를 스스로 풀어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주어진 삼각형과 넓이가 같은 정사각형을 눈금 없는 자와 컴퍼스만을 이용해 작도하라’는 문제를 풀기 위해 일주일 동안 방에 틀어박혀 씨름하기도 했다. 이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고방식을 익히는 계기가 됐다. 민 군은 ‘삼각형을 정삼각형으로 작도할 순 없을까’라고 스스로 문제를 냈으며, 문제가 풀리지 않자 작도 관련 책을 모조리 찾아 읽었다. 민 군은 “수학은 기본기를 탄탄히 다져놓으면 어느 순간 부쩍 실력이 느는 것 같다”고 말했다.

○ 항상 답은 ‘기본’에 있다

민 군은 ‘어려운 문제를 가장 기초적인 방법으로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수준 높은 풀이법’이라고 믿는다. 그가 수학공식을 무작정 외우기보다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집중하는 이유.

고교 입학 뒤 그가 택한 방식은 일명 ‘깜지’(종이에 글씨를 까맣게 가득 채워 쓰며 하는 공부). 그는 일주일 동안 학교에서 배운 수학교과서 내용을 주말이면 종이 위에 옮겨 썼다.

“손으로 쓰면 말로 할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리잖아요? 그만큼 생각하는 시간도 늘기 때문에 수학적 원리를 더 꼼꼼히 따져보게 돼요. 손과 눈이 함께 움직이니까 집중력도 높아졌어요.”

민 군은 교과서로 개념을 완벽히 이해한 후에야 문제집을 풀었다. 문제집을 풀 땐 늘 밑줄을 긋곤 했다. 밑줄을 그으면 시각효과가 생겨 집중력이 높아지고 다음번에 풀 때도 이해속도가 빨라진다는 게 그의 설명.

유형별 문제집보다는 개념을 충실히 다룬 문제집을 파고들었다. 유형별 문제 위주로 공부하다 보면 문제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푸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 이런 맥락에서 민 군은 “답지의 해설을 절대로 보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가 선호한 교재는 수능 기출문제집과 모의고사 문제다. 이들 문제는 고교과정에서 다룬 수학의 여러 개념을 통합해 출제된 것이기에 사고확장에 유용했다. 심지어 민 군은 몇 년간 치른 모의고사 문제를 모아 중요개념, 관련 단원, 출제의도 등을 모조리 분석하기도 했다.

한번은 정사각뿔을 밑면의 마주보는 두 선분과 평행한 평면으로 잘랐을 때 생기는 다면체의 부피를 구하는 문제가 있었다. 문제가 풀리지 않아 샌드위치를 먹던 중 ‘입체를 한 덩어리가 아닌 여러 개의 조각으로 나누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렸다. 민 군은 “어려운 문제를 끝까지 풀어냈을 때 느끼는 성취감 때문에 수학의 매력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것 같다”며 웃었다.

박은정 기자 ej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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