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비하발언’ 기소 싸고 인도인 피해자측-검찰 시각차

  • 입력 2009년 9월 8일 02시 56분


코멘트
피해자 “인종차별 첫 형사 처벌”
검찰 “인종 무관한 모욕 혐의”
세계 30여개국 법으로 처벌… 국내서도 입법추진 움직임

인도인을 비하한 한국인 남성에게 형법상 모욕죄를 적용해 약식 기소된 사례를 두고 검찰과 피해자 측이 미묘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피해자인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 성공회대 연구교수(28) 측은 “사법사상 처음으로 인종차별 발언이 형사처벌 대상이 됐다”며 ‘인종차별’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검찰은 “인종차별적 발언 여부와 관계없이 가해자의 발언이 피해자의 명예심에 상처를 준 사실이 인정돼 모욕 혐의로 기소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피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7월 10일 버스 안에서 한국인 친구와 영어로 대화하던 후세인 씨에게 술에 취한 채 퇴근하던 회사원 박모 씨(31)가 “아 더러워, 어디서 왔어. 이 냄새나는 ××야”라고 욕을 한 데서 비롯됐다. 이 발언의 전후과정에 대해선 서로 주장이 다르다. 박 씨는 조사과정에서 “피곤한 몸으로 퇴근하는데 버스 안에서 떠들기에 몇 차례 조용히 하라고 했다”고 주장한 반면 후세인 씨 측은 “주의를 의식해 나직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데 박 씨가 욕설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모욕감을 느낀 후세인 씨는 박 씨를 경찰서로 데려가 수사를 요청하며 고소했고 박 씨도 맞고소했다. 사건을 송치받은 인천지검 부천지청은 ‘우발적인 일인 만큼 고소를 취하할 뜻이 없느냐’고 양측에 물었고, 박 씨는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고소를 취소했다. 그러나 후세인 씨는 그럴 의사가 없다고 했고, 결국 검찰은 지난달 31일 박 씨를 벌금형에 약식 기소했다. 후세인 씨를 지원했던 단체 등에서는 “인종주의를 묵인해온 사회적 인식을 환기하고 본격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이에 대해 부천지청 관계자는 7일 “술에 취한 박 씨가 후세인 씨의 명예심을 손상시키는 말을 한 사실을 확인해 형사처벌한 것이지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고 해서 기소한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박 씨를 기소하면서 인종차별적 발언이었는지를 특별히 고려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아무튼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인종차별을 예방하고 규제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발도상국에서 입국한 외국인이 급증하고 있고 다문화가정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더는 미룰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인종차별 행위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30여 개국에 이르고 있으며, 대개 인종이나 종교, 성별에 따른 차별 또는 모욕행위를 ‘증오범죄(Hate Crime)’로 분류하고 있다. 미국은 1964년 제정된 ‘민권법’에서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국적에 따른 투표, 공공시설 이용, 교육, 고용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 뒤 1991년에는 의도적인 차별과 괴롭힘에 대해 손해배상 의무를 지우는 강화된 수정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프랑스 형법은 출신 성별 인종에 따라 차별 행위를 했을 때 3∼5년의 금고형과 4만5000∼7만5000유로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영국도 1976년 제정된 ‘인종관계법’에서 국적 및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위협·모욕하거나 적대적인 감정을 표출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등에선 인종이나 종교적 편향에서 비롯된 범죄에 대해선 가중 처벌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입법 추진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6일 발의하겠다고 밝힌 ‘인종차별금지법’은 고용이나 교육, 의료서비스 등에서 외국인을 차별하고 수치심과 모욕감 등 정신적 고통을 줬을 때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