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카리스마! 역시 여검사죠”

  • 입력 2009년 8월 1일 02시 58분


한국 표준 여검사 ‘외고-서울대 법대 출신 형사부 33세’ 김지영씨가 말하는 검찰
여자라 빈정대던 피의자
조곤조곤 따지면 고개 푹
스폰서? 딴 세상 이야기
폭탄주? 안마시면 그만

“그럼 부엌에 들어가서 칼을 들고 나올 땐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지난달 28일 수원지검 성남지청 272호 검사실. 살인미수 혐의 피의자 A 씨와 마주앉은 형사2부 김지영 검사(사법시험 46회)가 질문을 던졌다. A 씨는 “죽이려는 마음은 없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 검사도 포기하지 않았다. 살인미수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 상황을 영화 장면처럼 세밀하게 끊어가며 신문을 이어갔다. 김 검사가 “당시 피해자에게 ‘넌 죽어도 돼’라고 했다는 진술이 있다”고 추궁하자 A 씨는 “인정한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 대한민국 ‘표준 여검사’는…

김 검사는 대한민국 ‘표준 여검사’다. 동아일보가 법무부에 의뢰해 전국 여성 검사 318명의 출신 지역과 학교, 나이, 근무 부서 등 10개 항목을 조사해 분석한 결과 ‘서울 출신에 외국어고와 서울대 법대를 거쳐 검찰 형사부에 근무하는 32.67세’가 그 평균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 검사는 서울에서 태어나 한영외국어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온 후 형사부에 근무하는 33세의 여검사로 평균치에 가장 가깝다. 김 검사는 사법연수원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 사건’을 판례로 배우고, 2003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사례로 공부한 신세대 검사다. 하지만 일단 수사를 시작하면 차분하면서도 치밀한 여성 특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한다.

지난해 부산지검 동부지청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김 검사는 4건의 성폭행과 살인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B 씨를 수사했다. 당시 B 씨는 “예쁘장하게 생긴 여검사님이 왜 이러십니까. 살살 하시죠”라고 빈정거리며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다. 하지만 김 검사는 차분하고 치밀하게 수사를 벌여 B 씨의 살인 혐의 2건을 추가로 밝혀냈다. 김 검사는 B 씨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했고 법원은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 뒤 법정에서 만난 B 씨는 김 검사와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고 한다.

○ 여검사가 소수라는 건 옛말

김 검사는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 낙마 과정에서 불거진 ‘스폰서 검사’ 논란에 대해 “3년째 검사생활을 하면서 ‘스폰서’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면서 “누가 밥이라도 사줬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그는 “폭탄주 마시기가 힘들어 검사생활이 어렵다거나 계장들이 여검사라고 잘 따르지 않는다는 것도 옛말”이라고 했다. 폭탄주가 싫으면 마시지 않으면 되고, 검사실 직원들도 여검사 방의 분위기가 더 좋다며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김 검사에게선 남성 중심의 검찰조직에서 여검사가 느끼던 소수자로서의 피해의식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2007년 처음 검찰에 발을 디뎠을 때 200여 명이던 여검사가 이제는 318명으로 전체 검사(1769명)의 18%에 이른다. 이런 추세가 유지된다면 2020년경에는 여검사가 검찰의 ‘주류’로 활약할 것으로 전망된다.

○ “권위 벗고 친절한 검찰 돼야”

대한민국 표준 여검사가 그리는 올바른 검찰상에 대해 묻자 “검찰이 좀 더 친절하고 부드러운 서비스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 검사는 “수사도 윽박지른다고 되는 게 아니다. (사건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좀 더 많이 들어주고 부드럽게 조사해야 한다”며 여검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별수사나 공안 등의 부서에서 근무하는 여검사가 드문 것에 대해서는 “특수 공안사건 못지않게 사회의 작은 부분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다. 권위에서 벗어난 친절한 검찰,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검찰의 미래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사들이 여검사를 보는 시각은 어떨까.

성남지청 김영준 차장은 “여검사를 배려한다고 힘들고 민감한 업무를 남성 검사들에게만 시키는 것은 오히려 차별이 된다”며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여검사 스스로도 ‘여성검사’가 아닌 ‘검사’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성남=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김현승 인턴기자 한동대 언론정보문화학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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