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고용대란 ‘재깍재깍’

  • 입력 2009년 6월 8일 02시 50분


‘2년→4년’ 개정안 이달중 통과 안되면 내달 해고사태 우려

#사례1 경남 창원의 한 연구소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이모 씨(27)는 비정규직보호법의 적용을 받는 7월이 가까워지면서 오히려 직장을 잃을까봐 마음이 편치 않다. 그는 “법대로라면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 지금 같은 때 나가면 어떻게 살란 말이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연구소의 인사담당자는 “전체 직원 400여 명 중 200여 명이 비정규직인데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비정규직의 절반은 연구소를 떠나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사례2 경기 안산시에 있는 한 자동차부품업체는 올해 들어 GM대우자동차의 경영난과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공장 가동률을 30% 정도 낮췄다. 불똥은 가장 먼저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튀었다. 이곳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30명 가운데 25명은 회사를 떠났다. 이 회사의 인사담당자는 “지금은 인력이 너무 줄어 비정규직이 다시 몇 명 필요해졌지만 관련법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뽑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해고 사태는 단순한 우려 수준을 넘어 이미 현실이 됐다.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한계상황에 처한 기업에서 비정규직의 실직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비정규직 보호법은 다음 달 1일 적용을 앞두고 비정규직의 대량해고 사태를 촉발할 시한폭탄으로 다가오고 있다.

7일 노동부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올해 3월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는 537만4000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33.4%를 차지할 정도로 노동시장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 다음 달로 한 사업장에서 2년 이상 근무해 비정규직보호법을 적용받는 근로자는 적게는 70만 명, 많게는 10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게 정부의 추산이다. 추산 방법에 따라 대상 인원이 다르지만 적어도 수십만 명이 정규직 전환과 실업자 전락 사이에서 운명의 나날을 보내는 셈이다.

허원용 노동부 고용평등정책관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4월에 국회에 제출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다”며 “이달 중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7월 고용대란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2007년 7월부터 2008년 3월까지 고용동향을 조사한 결과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근로자는 4만4000명에 그쳤다. 반면 비정규직 가운데 고용의 질이 상대적으로 높은 ‘기간제’와 ‘반복갱신’ 일자리는 각각 32만 개, 31만8000개 줄었으며 이보다 고용 조건이 열악한 ‘계속 고용 불가’ 일자리는 24만6000개나 늘었다.

그런데도 노동계는 정부의 비정규직법 개정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정치권은 이 문제를 본격 논의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노동계는 비정규직법은 바꾸지 말고 시행시기만 4년 늦추자는 한나라당 일각의 타협안에 대해서도 “비정규직의 고통을 4년 더 연장하는 대책에 불과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성과평가실장은 “지금은 위기상황이기 때문에 비정규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실업 문제 해결에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다만 이는 한시적인 것이고 근본적으로는 과다한 보호를 받고 있는 정규직의 처우를 낮춰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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