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수사 용두사미땐 신뢰성 타격”

  • 입력 2009년 6월 1일 02시 54분


盧측 수사 물건너간 마당에 천신일 엄중 처리로 돌파구

정치인 등 10여명 추가소환 이달 중순까지 마무리 계획

■ ‘박연차 리스트’ 수사 재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일시 중단됐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8일 만에 재개됐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31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데 이어 이번 주에 ‘박연차 리스트’에 오른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다시 시작한다.

검찰은 ‘박연차 게이트’ 수사의 핵심으로 삼아 왔던 노 전 대통령이 5월 23일 서거하자 임채진 검찰총장이 사표를 냈다가 되돌려 받는 등 충격 속에서 1주일을 보냈다. 그 사이 검찰은 박 전 회장의 측근인 정승영 전 정산컨트리클럽 사장 등을 불러 참고인 조사를 벌이는 등 ‘박연차 리스트’ 수사 재개에 대비해 왔다.

천신일 회장 영장 발부여부 촉각

수사팀은 이번 주말에도 출근해 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릴 천 회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검찰 수사 자체가 비판의 도마에 오른 상황에서 천 회장의 구속영장까지 기각된다면 이번 수사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마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천 회장은 현 정권의 실력자라는 점에서 자칫하면 ‘봐주기 수사’라는 또 다른 비판에 휩싸일 우려가 있다.

검찰이 보고 있는 천 회장의 주요 혐의는 박 전 회장의 돈을 받고 한상률 전 국세청장 등에게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벌였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미 한 전 청장에게서 “천 회장이 박 전 회장의 세무조사 관련 부탁을 해왔다”는 서면진술을 받았다. 천 회장이 지난해 8월 중국 베이징 올림픽 때 박 전 회장에게서 받은 15만 위안, 박 전 회장이 세중나모여행의 계열사인 옛 세중게임박스에 투자했다가 같은 해 11월 회수하지 않은 8억 원이 그 대가라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이와 별도로 천 회장은 주식매매 과정에서 증여세 85억 원과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혐의도 받고 있다.

나머지 수사 순조로울까

‘박연차 리스트’에 오른 나머지 인사들에 대한 수사도 간단하지는 않다. 검찰이 추가 소환대상으로 꼽는 인사는 10명 안팎이다. 이번 주부터 김태호 경남지사 등 지방자치단체장 및 각급 기관장 3, 4명과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2, 3명, 지방의 고법 부장판사 등을 차례로 소환조사할 예정이다.

검찰은 이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마친 뒤 이미 조사를 받은 한나라당 박진 의원, 민주당 서갑원 최철국 의원, 박관용 김원기 전 국회의장, 민유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김종로 부산고검 검사, 이택순 전 경찰청장 등과 함께 일괄 처리할 계획이다.

검찰은 모든 수사를 6월 중순까지 마무리할 방침이지만 현직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이 출석을 미루거나 참고인들이 수사 협조를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특히 박 전 회장이 계속 검찰 수사에 협조할지도 변수다. 대부분 달러나 현금으로 은밀하게 건네진 이번 사건의 경우 박 전 회장의 진술은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박 전 회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상태여서 앞으로 어떤 태도를 보일지 알 수 없다.

정치권의 ‘수뇌부 책임론’도 변수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임채진 검찰총장 사퇴 요구도 앞으로의 수사에 변수가 될 수 있다. 정치권 일각의 주장이 여론의 호응을 얻게 되면 검찰로서는 수사를 이끌어갈 동력이 떨어지면서 나머지 수사가 지지부진해질 우려도 있다. 임 총장은 이번 수사가 마무리되면 물러나겠다는 뜻을 굳힌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 거취 문제가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게 되면 검찰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전후 사정 때문에 대검 중수부 수사팀은 최대한 빠르게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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