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서울시 시설관리공단-고양시 한우영농조합 ‘결초상생’

  • 입력 2009년 6월 1일 02시 54분


풀 무상 제공받은 조합 사료 가공해 싼값 공급

도로변 풀 베 비용들여 버리느니 한우 사료로 농가서 재활용하게

경기 고양시에서 한우를 기르는 유완식 씨(50)는 고민이 많았다. 지난해 전 세계를 뒤덮은 곡물 가격 폭등으로 사료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기 때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환율까지 이어졌다. 사료 재료를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환율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참다못한 유 씨는 경기도청에 찾아가 “사료를 싸게 만들거나 저렴하게 살 방법을 모색해 달라”고 요청했다. 경기도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지만 해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자동차도로 주변 풀을 한우 사료로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은 매년 3, 4차례씩 자동차전용도로 주변 녹지대의 풀을 벤다. 그냥 두면 무성하게 자라 경관을 헤치기 때문이다. 공단은 해마다 7000여만 원을 풀 베는 비용으로 지출한다. 여기에는 풀을 버리는 비용까지 포함된다. 지난해 도로환경관리팀 김종락 과장 등은 때마침 한우 농가가 사료 값 폭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팀원들은 “비용을 들여 풀을 버릴 바에야 차라리 한우 사료로 농가들에 제공해 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공단에 냈다.

공단은 검토에 들어갔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오염 여부였다. 매일 자동차 매연에 노출되는 풀을 한우가 먹어도 되는지 과학적 검증이 필요했다. 공단과 경기도청은 지난해 6월 올림픽대로, 강변북로 등 4개 노선 15곳 녹지대에서 풀을 채취해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에 잔재물 오염도 조사를 의뢰했다. 축산과학원은 비소, 크롬, 납, 수은, 카드뮴 등 전 항목에 걸쳐 ‘적합’ 판정을 내렸다. 오염도가 공원 잔디밭 수준이라 가축이 먹어도 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도시와 농촌의 상생

마침내 지난해 9월 도시와 농촌은 손을 맞잡았다. 경기도,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고양한우영농조합은 ‘풀 사료 제공 협약’을 맺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공단은 서울 자동차전용도로 주변 녹지대 158만 m²에서 매년 깎아낸 풀을 조합에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조합은 농가로 직접 나눠주거나 사료공장에서 가공해 저렴하게 사료를 공급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267.5t 분량의 풀이 한우 사료로 탈바꿈했다. 한우 300마리가 1개월간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4800여만 원에 달한다. 현재 경기 서북부 지역 200여 한우 농가에 공급하고 있다. 고양한우영농조합의 김동섭 전무는 “일반 사료는 1kg에 350원대이지만 이제 280원 정도면 사료를 살 수 있다”며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구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전무는 농가마다 평균 10%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추산했다.

공단은 농가들의 반응이 좋아지자 지원 확대에 나섰다. 청계천 억새풀도 그냥 버릴 수 없었다. 올해 3월에만 2.5t 트럭 52대 분량의 억새가 한우 사료로 제공됐다. 동부간선도로 응봉교 주변에 재배하고 있는 청보리와 올림픽대로 여의교 부근 옥수수도 한우 농가로 향했다. 김 과장은 “잡초보다 옥수수나 청보리가 도시 경관에도 훨씬 좋다”며 “도시와 농촌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단은 올해에만 2.5t 트럭 152대 분량을 제공해 7000여만 원의 사료 구입비용을 절감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21일 제25회 고객감동 창의경영발표회에서 김 과장 등의 아이디어를 우수 사례로 선정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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