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재난통신망 6년 허송세월…‘대구지하철 참사’ 잊었나

  • 입력 2009년 5월 20일 02시 58분


KDI “경제성 없다”로 결론 번복… 백지화될 듯

재난과 관련된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통신망을 하나로 통합하는 ‘국가통합지휘무선통신망(국가통합통신망)사업’이 6년 만에 백지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추진됐던 국가통합통신망 구축 사업은 특정업체에 대한 독점 시비가 불거지면서 지난해 3월 이후 전면 중단된 상태다. 초대형 산불과 같이 경찰, 소방, 산림 등 관련 기관들의 신속한 공조가 필요한 재난이 발생했을 때 통합 교신 체계가 없어 심각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 “경제성 없다”

19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국가통합통신망 사업의 타당성 검토를 맡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결론은 이 연구원이 했던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를 정반대로 뒤집은 것이어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KDI는 2004년 같은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에선 편익비용비율(BCR)이 17.72로 나왔다며 ‘경제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BCR가 1이 넘으면 투자대비 경제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KDI는 이번에는 BCR가 1 이하인 것으로 측정했다. KDI 관계자는 “2004년 보고서에서 전제로 했던 국가통합통신망 운용 표준절차 구축이나 이(異)기종 망의 호환성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KDI는 당초 지난해 11월 말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올해 3월로 한 차례 미룬 데 이어 이달 말로 다시 연기했다. KDI의 결론에 대해 부처별로 의견이 엇갈려 결과 발표가 다시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 현장의 혼란

국가통합통신망에 대한 정부의 판단이 6년간 오락가락하면서 내구연한이 지난 통신장비 교체시기를 놓친 기관이 많다. 1984년 개통한 부산지하철 1호선은 내구연한이 20년인 아날로그 초단파(VHF) 무선통신 장비를 25년째 쓰고 있다. 기존 방식의 새 장비로 교체할지,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할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산교통공사 관계자는 “장비가 낡아서 성능이 떨어지지만 국가통합통신망 추진 여부가 확정될 때까지 유지보수만 하면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의료원도 구식 VHF 장비 대신 올해 2월 한 통신사에서 아이덴(iDEN·미국 모토로라 독자기술) 방식의 단말기 700여 대를 임차해 쓰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극심한 가뭄으로 산불 진화에 어느 때보다 바빴던 산림청은 1990년대 중반 도입한 VHF 단말기 2만여 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기 100대만 올해 교체할 계획이다. 산불감시원과 현장 진화대원, 헬기 등 산림청 인력 간의 통신은 가능하지만 다른 방식의 단말기를 쓰는 경찰이나 소방관과의 교신은 불가능하다. 특히 산간지방은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이 많아 대부분 육성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 경제성으로 판단할 수 있나

국가통합통신망 사업이 백지화되면 지금까지 통신망 구축에 들어간 약 800억 원의 예산이 매몰될 것으로 보인다. 사업이 당초 계획대로 추진됐다면 올해 테트라(TETRA·유럽 표준) 방식의 주파수공용통신(TRS)망이 전국에 깔리고 경찰청과 소방방재청, 산림청, 지하철공사 등 전국 1441개 기관에 단말기가 지급될 예정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재난관련 기관 관계자는 “국가 재난에 대비하는 작업을 경제성으로 평가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국, 독일, 핀란드,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재난 상황에서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를 갖추기 위해 국가통합통신망을 구축하고 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